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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여기에
텅 빈
대굴대굴  2026/09/10 09:28

잠이 깼다. 정확히는 정신이 들었다. 하지만 몸은 아직 내 통제 밖이다.


이런.


가위에 눌린 상태다.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리 없지만 욕을 해본다. 습관이다. 밤이 무섭고 자는 게 두려울 때, 가위에서 풀리면 그렇게라도 해야 했다. 너무 무서워서. 그 정도로 심각한 상태는 극복했지만, 간혹 가위에 눌린 상태로 정신이 돌아오면 반사적으로 욕을 하고 투덜댄다.


또냐? 적당히 좀 하자. 니미.


몸의 끝부분,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움직여서 가위를 풀어내라고 하지만 내 경우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서 푼다. 이것도 습관이다. 맨 처음 가위에 눌렸을 때 목을 돌리면서 풀어냈거든. 그 탓에 목에 힘을 주는지 풀리고 나면 목이 뻣뻣해서 고개를 살살 돌려줘야 한다. 이 정도면 양반이다. 매일 같이 가위와 벗 삼을 땐 풀린 뒤에도 그 우정에 짓눌려서 눈조차 뜨지 못했다.


뻣뻣한 목 근육을 풀고서 누운 채로 주변을 둘러본다. 있다. 내 허벅지 옆에 검은색 자취가 보인다. 팔다리 위아래로 쭉 펼친 자세로 세상 모르게 널브러져 자는 중이다. 입양한 지 3개월 정도 된 아기 고양이. 나도 다시 잠을 청한다. 가위눌린 흔적 같은 건 더 이상 없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읽다가 썬데이 저스티스라는 고양이를 만났다. 반가웠다. 그리고 카야를 이해했다. 난 요즘도 아무 이유 없이 잠에서 깨면 습관처럼 주변을 둘러보며 고양이를 찾는다. 어딘가에서 나를 시야에 두고 있을 고양이를. 어둠보다 더 짙은 그 어두운 색채에 악몽도, 가위도 발을 내딛지 못한다.


‘카야는 옷 입은 채로 그 자리에 누웠고 둘 다 아늑하게 자리를 잡았다. 카야는 고양이가 잠자는 모습을 지켜보다 따라서 잠이 들었다. 더는 화들짝 소스라쳐 깨어나지 않고, 마침내 아무것도 없이 텅 빈 평온 속에 표류했다.‘

- 델리아 오언스 <가재가 노래하는 곳> p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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