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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여기에
투덜이
대굴대굴  2026/08/14 08:21

산에 오른다. 지난주 낮 기온 39도를 찍은 날 산을 오를 땐 자괴감이 들었다. 혹서기 극기 훈련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흘러나오는 땀에 모든 생각이 휩쓸려서 2시간 내내 저 생각만 했다. 어쩌면 저 자괴감이 그 순간 내 생명줄이었는지도 모른다. 안 그랬으면 좀비처럼 멍하니 올라갔다가 내려왔을 테니까. 그런데 이번 주는 다르다. 34도 정도의 온도. 사실 수치만 놓고 보면 더운 날씨지만 지난주 발작에 가까운 더위가 34도쯤은 아무것도 아닌 걸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한결 시원해진(?) 날씨에 감사하며 산에 오른다.


우리나라 산엔 소나무 같은 침엽수가 많다. 잎이 좁아서 가뭄에 강하고 사시사철 푸르다. 그래서 별생각 없었는데, 군데군데 보이는 큰 나무들의, 침엽수가 아닌 나무들의 잎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게 보였다. 가뭄인가? 폭우처럼 쏟아지던 장마철이 3주 전이었나? 그거밖에 안 지났다고? 여름이 시작되던 6월은 밤엔 시원해서 창을 열어놓고 잘 수 있었다. 7월 들어 급격히 더워졌고, 곧이어 장마가 스치듯 할퀴고 지나갔으며, 그 상처를 끔찍한 무더위가 파고들었다. 변화의 진폭은 컸지만, 변화의 주기는 짧았다. 하늘을 보며 슬쩍 투덜대본다. 아니, 무슨 변덕이 우리 집 고양이 수준이래.


꼭대기에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본다. 모지리가 성벽 저쪽 구멍에서 고개만 쏙 내밀고 이쪽을 살피고 있다. 닭가슴살을 주자 허겁지겁 먹는다.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날이 너무 더우면 산을 찾는 사람이 준다. 야, 너 명색이 들고양인데 여기서 사냥도 하는 거 맞지? 예전에 나비 잡던 거 보면 영 미덥지 않아서. 골격이 작은 녀석이지만 더 마른 듯한 느낌이다. 올라오면서 봤던, 낙엽과 나뭇가지와 돌들이 앙증맞게 쌓여있던,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지만 위치상으로 보면 전혀 그럴 이유가 없는, 볼록한 무더기가 신경 쓰인다. 마치 조그마한 봉분 같아서. 사람들은 종종 자연환경을 모성에 빗댄다. 생명을 품는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인간의 관점일 것이다. 자연은 공감 능력이 없다. 식물이 마르든, 동물이 죽든 알 바 아니다. 그저 철저하게 공평할 뿐이다. 다시 한번 불평하려다가 입만 한번 삐죽거리다 만다. 공평하지도 못할뿐더러 공감 능력까지 잃어가는 인간이 감히 어디에 대고 투덜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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