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늘어서 반려동물 전문 블로그가 아니더라도 고양이나 개에 관한 글을 많이 접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물들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도 종종 들을 수밖에 없다. 죽다 살아난 이야기, 이별을 앞둔 마지막 기록들, 무심결에 맞닥뜨린 아기 길냥이의 죽음 같은 것들. 그리고 그 자리에 묻어나는 기록한 자들의 감정들.
고양이가 내 곁에 자리 잡기 전에 죽음에 대한 관심사라면 당연히 ‘나’와 관련된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폐를 끼치지 않고 나 자신을 지키면서 세상을 뜰 수 있을까? 아니면 이렇게 혼자 살다 어느 날 갑자기 죽으면 어떡하지? 한때 고독사가 사회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다. 가족과 연락을 끊고 살다가, 혹은 외톨이로 남아 혼자 살다가 죽고 나서 몇 달이 지나서야 시체가 발견된 사람들에 관한 기사들이 넘쳐났다. 지금이라고 해서 그런 죽음이 갑자기 사라졌을 리 없지만, 그때만 해도 모든 언론이 시끌벅적했었다. 그때 대공원 그 아저씨와 나누었던 대화가 있다.
대공원 그 아저씨 : 형님, 남의 얘기가 아니에요. 형님은 그래도 조카랑 누나들이 있지만 난 완전 혼자나 다름없어요.
나 : 흠...
대공원 그 아저씨 : 이러다 집안에서 갑자기 쓰러지면 그대로 세상 뜨는 거잖아.
나 : 틀린 말은 아닌데. 좀 달라. 당신처럼 하루 15시간 이상, 주 7일 쉬지 않고 일하다 죽는 건 ‘고독사’가 아니라 ‘과로사’야. 우리, 말은 바로 합시다. 담당하는 정부 기관도 다를 걸 아마?
대공원 그 아저씨 : 진짜! 그러기에요, 형님!
나 : 은근슬쩍 고독사에 발 담글 생각하지 마. 우선 일부터 줄여. 그럼 내가 진지하게 고민해 볼게.
어느 날, 어둑어둑한 고양이가 내 곁에 눌러앉았고, 내 관심사는 고양이에게로 향했다. 내가 집에 없을 때 급사하면 어떡하지? (고양이는 아픈 티를 안 내기 때문에 겉보기에 급사인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내가 먼저 죽으면 어떡하지? 때 이른 걱정이고, 어쩌면 지나친 걱정일 수도 있다. 그래도 간혹, 다른 블로그에 드리운 그림자와 맞닥뜨릴 때면 그런 생각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그 의문과 불안을 바로 해결해 줄 방법은 없다. 죽음은 아무것도 정해놓지 않았을 테니까.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보자 싶지만 내겐 어울리지 않는다. 나에게 맞는 건, 그저 하던 대로, 오늘도 어제처럼 온갖 감정에 휩싸인 채 살아내는 것. 그리고 농담 반, 진담 반인 듯 적절한 거리를 두며 죽음을 응시할 것. 그리고 나를 둘러싼 이 모든 삶을 치열하고 차별 없이 누릴 것.
그래서...
베란다에서 고양이와 함께 길가에 전봇대를 뽑는 걸 구경한다. 저렇게 전봇대를 통째로 뽑아낸다고? 그렇군. 고양이를 슬쩍 보니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듯 보인다. 조심스레 옆을 빠져나오지만, 어느새 고양이도 내 뒤를 따라잡는다. 자라, 고양이. 넌 잘 때가 제일 예쁘다. 언제나 그렇듯 내 말은 개소리로 전락한다. 졸졸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