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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여기에
자연
대굴대굴  2026/07/31 09:00

산 정상에 거의 도착했다. 바로 아래쪽, 나무로 그늘이 지고 바위로 평평한 부분부터 살폈다. 없다. 아저씨 한 분만 앉아서 쉬고 있다. 정상에 올라 성곽 구멍들을 쭉 훑었지만 역시 없다. 지난주부터 고양이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지난 주엔 젖소(모지리)와 새로 등장한 삼색이만 봤다. 사람이 근처에 있건 말건 항상 그늘을 차지하고 쉬던 고양이 두 녀석도 보지 못했다. 아쉬움에 정상에서 서성이는데 작년 가을 삼색이가 처음으로 튀어나왔던 수풀 속에서 뭔가 귀여움이 스쳐 지나간다. 뭐지? 빤히 쳐다보다가 그 안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눈동자와 마주친다. 헉! 아기 고양이들! 그것도 하나, 둘, 셋, 넷! 가까이 다가가자, 수풀 속으로 쑥 들어가서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 교육 잘 받았구나. 일단 사람이 다가가면 피하는 게 맞지.


기다려봐도 나오지 않길래 어쩔지 망설이는데 모지리 등장. 모지리에게 닭가슴살 두 개 투척. 다시 수풀 앞으로 다가가 닭가슴살 하나를 잘게 쪼개서 아기들이 머물던 자리에 흩어놓는다. 그리곤 돌아가려는데 조금 용감한 두 녀석이 나타나서 열심히 먹어 치운다. 치즈냥이와 젖소냥이다. 이 산에서 치즈는 귀한데. 다 먹길 기다렸다가 마지막 닭가슴살을 잘게 찢어 놓아준다. 두 마리 추가로 등장. 삼색이와 고등어인가? 색이 애매하게 섞였네. 카오스인가? 연이어 엄마 등장. 지난주 처음 봤던 새로 온 삼색이다. 닭가슴살 없는데. 애를 넷이나 키우려면 잘 먹어야 하는데. 주식이 아닌 간식거리라도 주려고 가까이 다가가자 대차게 하악질 작렬. 하나도 안 무섭거든. 덩치나 좀 키우고 하악질을 하던지. 그렇게 하찮아서 어디 새 한 마리나 쫓겠냐? 조그만 체구가 안쓰러워 툴툴대다가 조금 전 모지리에게 준 닭가슴살 두 개가 아까워서 녀석 쪽을 휙 돌아본다. 저 자슥, 다른 때는 잘 안 보이더니만 오늘은 눈에 확 띄고! 새끼들과 함께 열심히 간식거리를 주워 먹는 삼색이를 보며 생각한다. 그 하찮은 하악질로 여기 고양이들 다 내쫓았니? 아님 다른 고양이들이 피해 준 건가? 어, 가만 있어봐... 아기 중에 젖소가 있고, 지난주부터 보이는 건 모지리 뿐인데…. 모지리 너, 이 아이들 아빠야?! 이런 세상에나. 모지리 너 모지리가 아니구나. 정상에 있던 사람들이 아기 고양이의 존재를 알아챘다. 다행히 거리를 두고 사진을 찍는다. 모지리는 다시 스텔스 모드. 저 녀석,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구먼.


고양이 가족들을 지켜본 후 산에서 내려온다. 정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내리막길. 아기들 덕에 즐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내딛다가 옆에 있는 새와 마주친다. 까치? 다른 새인가? 어른인가? 완전 성체는 아닌가? 길옆에 새가 옆으로 누워있다. 근처에서 소리가 들리면 고개를 돌리지만 날거나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몸이 너무 깨끗하다. 상황은 죽음이 연상되지만, 외모는 멀쩡해서 그 괴리감 때문에 한참을 보고만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뱀한테 물렸나? 말벌에 쏘였나? 얘를 저쪽으로 옮겨도 상관없나? 살아가는 고양이에게 먹거리를 가져다주고 걱정하면서 죽어가는 새에게 관여하는 걸 주저하는 태도는 뭐지? 하필이면 사람조차 지나가지 않는다. 내가 소리를 내도 새는 돌아보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쳐다보기만 했을 뿐이다. 자연은 한 치의 예외 없이 공평했다. 그리고 그 순간 산이 내게 물었다. 너도 그럴 수 있냐고. 고양이가 내 앞에서 죽어가면 어떻게 하겠냐고.


꼬리말) 6월 25일에 썼던 글. 공교롭게 고양이와 새가 나와서 최근 길고양이 관련 이슈와 겹치지만 직접 관련은 없다. 누구나 자신만의 가치나 생각 같은 것들이 있고, 그것으로 갈등하며 고민한다. 이 글은 딱 여기까지다. 하지만 지금 덧붙이자면 그 결과가 나와 다른 무언가를 제물로 삼는 거라면, 난 그런 세상을 주저하지 않고 혐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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