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어느덧 여기에

장마가 끝나고 하늘이 갰다. 저 멀리 롯데타워가 불끈 솟아오른 채 전의를 불태우고 있고, 가까이엔 남산 위로 새하얀 구름이 폭발하듯 피어오르는 중이다. 그곳에서 서서히 퍼져나가는 구름은 세상의 때를 조금이라도 묻혀낸 듯 군데군데 회색빛을 품으며 사방으로 진군한다. 이 깔끔하고 쨍한 풍경에 이토록 전투적인 표현이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조금 전까지 저 풍경 속에서 습도와 햇볕에 둘러싸인 채 포위 공격을 당하고 있었다. 세상에, 피할 틈도 주지 않고 어찌나 꼼꼼하게 덤벼드는지.


이봐, 고양이, 아저씨 땀구멍으로 피 토하고 죽을 뻔했어.


산 위에선, 아니, 오가는 도중에도 고양이를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그곳조차도 습도와 햇볕은 여유를 두지 않았다.


이봐, 고양이, 산꼭대기에 햇볕이 습도를 타고 폭포처럼 떨어지더라. 나 익사할 뻔했어.


심한 뻥에 스스로 생각해 봐도 염치가 없었는지 몇 마디 잔뜩 덧붙인다.


너는 집고양이라 바깥 상황을 몰라서 그래. 산고양이들은 단박에 맞장구칠 텐데. 걔네들 이미 떠내려갔는지 없더라고.


무심코 들여다본 핸드폰 주식 창은 온통 파란색이다.


이것 봐, 이거. 익사했네, 익사. 고양이, 아저씨 돈도 떠내려간다. 야, 폭우처럼 돈 쓰고 폭포수처럼 돈이 빠진다.


절대 휩쓸리고 싶지 않은, 이토록 멋진 풍경이라니.


고양이, 이번 생은 어째 글러버린 거 같은데…. 눈 예쁘게 뜨자. 그렇게 쳐다보는 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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