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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여기에
안부
대굴대굴  2026/07/15 09:28

작년 여름 엄청난 무더위로 산에 오르는 걸 포기했었다. 그러다 9월 말, 아니면 10월 초쯤. 거의 4개월 만에 인왕산에 다시 갔다. 정상에 도착해 초코바 하나를 뜯어 먹는데 느닷없이 무언가 수풀 속에서 툭 튀어나와서 깜짝 놀랐다. 고양이 한 마리, 삼색이었다. 눈을 나름 동그랗게 뜨고 놀란 척을 하다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어렸을 때 골목에서 가끔 마주칠 법한 꼬맹이의 억울한 표정이 떠올라서다. ‘아 씨, 내가 안 그랬는데! 엄마는 맨날 나만 혼내!’ 그렇게 소리 지르면서 대문 밖으로 뛰어나온 개구쟁이 아이의 표정. 나도 한때는 저런 표정을 한 적이 있었을 텐데. 그렇게 삼색이는 내 마음을 뺏었다.


이 아이 이전엔 난 어떤 길고양이에게도 먹을 걸 주어본 적이 없다.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아이니까. 눈길을 주고 사진을 찍고 때론 웃고 때론 안타까워했지만 그뿐. 하지만 어느새 먹을 걸 한두 개씩 챙겨서 산으로 향했다. 전엔 근처 다른 산에 가기도 하고, 서울 둘레길을 찾아 걷기도 했다. 삼색이를 본 후론 인왕산에만 갔다. 많아야 일주일에 세 번, 그것도 갈 때마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먹을 걸 챙겨서 갔다. 세상에 태어난 지 길어야 6~7개월밖에 안 됐을 거 같고, 곧 추운 겨울이 오면 산 정상에 오는 사람은 많이 줄어들 터였다. 그래서 딱 1년만, 세상에 태어났으니, 사계절은 온전히, 건강하게 경험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젖소냥이에게도 정이 들었다. 당차고 똘망똘망한 삼색이와 달리 젖소냥이는 어수룩한 면이 있었다. 처음엔 그저 삼색이에 딸려오는 캐릭터 느낌이었는데, <모지리>란 글에서 썼던 상황을 거치면서 녀석에게도 정이 가기 시작했다. 삥 뜯어먹고 살아야 할 녀석이 눈에 잘 안 띄는 재주를 가졌으니 이렇게 모자랄 수가 있나 싶어서. 아우, 모지리, 진짜.


지금 정상엔 고양이들이 늘었다. 최근에 새로 등장한 녀석들은 삼색이와 모지리, 아니, 젖소냥이의 동생뻘 되는 아이들이 아닌가 싶다. 서로 적대하지 않는다. 다만 서열은 삼색이가 가장 높고, 그다음 모지리, 그리고 나머지들로 보인다. 최근 3주간 삼색이와 젖소냥이를 보지 못하다가 어제 모처럼 젖소냥이와 마주쳤다.


“야, 네 누나 어디 갔냐?”


대답할 리 없다. 대답하면 모지리가 아니지. 가져간 거 다 털어서 주고 내려오면서 생각한다. 딱 1년만, 온전히 4계절만 경험하라고 바라는 게 아니었어. 왜 더 길게 바라지 않았을까? 10년이라고 할 수도 있었고, 산신이 되라고 할 수도 있었는데.


집에 돌아와서 창밖을 구경 중인 고양이에게 슬며시 얘기한다. 이봐 고양이, 궁금해서 그러는데, 고양이별에 연락해서 삼색이 잘 있는지 알아볼 수 있을까? 내가 바람피우는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잘 있나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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