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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여기에
화장실
대굴대굴  2026/07/11 17:35

고양이를 쳐다보는 중이다. 마루에 접한 베란다 창 아래쪽에 턱이 있는데 녀석은 그곳에 상체를 걸치고 밖을 내다본다. 날이 더워지면서 간혹 저런 자세를 취하는데, 마음에 든 모양이다. 솔직히 저 눈높이로 밖을 내다봤자 건너편 아파트 끄트머리만 보일 뿐이다. 부동산에 관심 있는 건 아닐 테고. 무얼 보는 걸까? 시선을 돌려 화장실 문을 잠깐 응시하다 다시 고양이에게 관심을 돌린다. 제법 진지하게 밖을 보고 있다. 뭐가 보이니? 그냥 귀찮아서 그러고 있는 거야? 그러다 다시 화장실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상하네...


한 시간 전쯤. 건강 검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이것저것 하다가 화장실에 가야겠단 생각을 했다. 그리고 쭉 시간이 흘렀다. 고양이를 뒤쫓아 베란다로 가다가 갑자기 떠오른 의문 하나. 내가 아까 화장실에 갔던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갔던 거 같기도, 안 갔던 거 같기도. 그러면 지금 오줌이 마렵나? 그런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화장실 문을 열고 안을 살폈다. 다를 바 없는 모습. 무언가 변한 게 있다면 아까 들어와서 만졌단 얘기니까 확인이 가능하겠지만, 난 습관적으로 물건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사람이다. 티가 나는 게 없다. 수면 마취의 영향인가?


잠시 회상에 빠졌다 고양이를 보니, 한쪽 앞다리만 창턱에 걸친 자세로 나를 보고 있다. 이야, 너, 제대로 건방지구나. 근데 그러고 있음, 너 팔 저리지 않니? 고양이는 저리거나 하지 않나? 실없는 의문이라 생각하며 웃다가, 그렇다면 조금 전까지 품었던 의문은 진지한 것인가 싶어 얼굴을 살짝 찌푸린다. 화장실에 갔던가? 이런 사소한 일에서조차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키지 못하면, 난 무엇을 확신하며 살아야 하는 거지? 화장실 문을 힐끔거리는데 무언가 핥는 소리에 고양이를 본다. 창턱에 걸치고 있던 앞발을 열심히 그루밍 중이다. 어렸을 때 팔에 전기가 오르면 침 발라서 코에 묻히던 기억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저 녀석,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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