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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여기에

*** 중성화수술을 마치고 선생님이 지나가는 말처럼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껏 붕대를 이빨로 다 뜯어낸 고양이를 딱 한 번 봤었다고. 그러니까 별문제 없을 거라고. 살짝 불길했었는데 이 녀석이 두 번째 고양이였다. 같이 산 지 5년. 새벽에 불을 켜고 마주한 녀석의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붕대를 찢어놓고 그루밍을 하면서 자랑스러워하던, ‘나 잘했지?’라며 칭찬해달라는 그 표정. 표정뿐이겠나? 이후 이틀은 사진처럼 뇌 속에 각인된 이미지들이 수두룩하다. 옷을 입혀 놨더니 그것도 뜯겠다고 등 쪽을 물고 바닥을 구르지 않나(서커스단에서 탈출한 고양이인 줄), 앞발 하나를 빼서 목이 들어갈 자리에 집어넣고 걸어 다니질 않나, 앞발을 옷 밖으로 꺼내질 못해서 세 발로 나타나질 않나. ***


어제 중성화 수술이란 걸 했다. 하늘색 옷 입은 무서운 사람이 목덜미에 뭘 찔렀는데 갑자기 정신이 뿅 사라졌다. 눈 떠 봤더니 집. 오오! 고양이별에 있을 때 미리 얘기를 들어서 그렇지 안 그랬음 바보 될 뻔했다. 그런데! 배에 둘둘 감아놓은 이 하얀 거! 너무 불편하다! 가만있어봐라. 이거, 요기를 물어뜯으면…. 에잇, 뜯어져라, 뜯어져! (뒹굴뒹굴) 아우, 어지러워라. 먹은 것도 부실했는데 힘을 썼더니만…. 이봐, 아저씨! 생각이 있는 거냐? 잠만 자지 말고 까까를 내놔라! 냥. 아니야. 일단 이것부터 벗겨내고. 배를 감고 있어서 먹다 체하겄어.


자, 다시 침착하게. 요렇게 요렇게. 이이잇. 냥! 뜯어졌다! 랄랄~ 이쯤은 포장 뜯긴 츄르 먹기지. 응? 아저씨, 일어났냐? 이거 봐라, 내가 다 풀어 헤쳤다, 잘했지?


야! 너 뭐 한 거야!


아우, 깜짝이야! 왜 소릴 지르고 그래? 애 떨어지게. 냥, 애는 어차피 못 가지는구나. 아니, 아니, 다시 감으면 안 되지! ... 히히, 내가 확실하게 물어뜯어 놓아서 다시 안 감길 거야.


아 진짜. 옷을 입혀야겠네. 붕대를 이렇게 해놓으면 어떡하냐.


옷? 뭐냐 이건 또? 어라, 왜 뒤로 간다니? 이거 당장 벗겨라! 몸이 고장 난 거 같다! 왜 가고 싶은 방향으로 움직여지질 않냐? 아저씨, 고양이는 이미 털코트 입고 있는 거 몰라? 이거 치워라, 답답하다! 고양이에게 자유를 달라! 아파트 주민들, 여기 보시오! 삐쩍 마른 아저씨가 고양이를 잡소! 그냥 가냐? 야, 이 아저씨야, 생각이 있는 거냐! 두고 봐라, 너. 내가 아저씨랑 다시 놀아주면 고양이가 아니다!


어디 보자…. 몸통을 감싼 상태에서 머리랑 발들이 구멍으로 빠져나와 있네. 그럼 앞발을 하나 끌어당겨서 안으로 넣고…. 아 씨. 아 씨. 아이 씨이! 냥. 냥. 저기, 아저씨. 앞발 하나가 안으로 들어가서 안 빠지는데 이것 좀 어떻게 해주면 안 될까? 발 세 개로 걸으려니까 고양이답지 않아서 말이지. 아니, 그렇게 째려보지만 말고. 내가 놀아달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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