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초입부터 심상치 않다. 근처에 절이 있고 산으로 이어지는 언덕이 있다. 그 언덕배기에 고양이가 있었다. 항상 봤던 건 고등어 한 마리. 그런데 오늘은 무려 세 마리다. 고등어, 젖소, 삼색이. 질식할 거 같은 초록색 안에 팔딱거리는 고등어, 묵직한 젖소, 새침한 삼색이. 이 산은 아무래도 요 세 종류 유전자가 강세인 모양이다.
산 중턱. 어라, 또 세 마리다. 또 같은 조합이다. 고등어, 젖소, 삼색이. 아마도 젖소와 삼색이는 정상에 자리 잡은 고양이들보다 한 세대 앞선 형제, 자매들이거나 부모일 가능성이 크다. 체격도 크고 정상의 꼬맹이들이 나타나기 전부터 있었다. 절벽이나 등산로 가까이에 앉아서 햇볕을 쬐거나 잠을 잔다. 이 위치에선 사람들이 쉬기만 하지 먹지는 않아서 고양이들도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진 않는 편이다. 그나저나 저 고등어. 원래 정상에 있던 그 고등어 아닌가? 체격도 그렇고, 졸린 듯한 표정도 그렇고. 너 혹시 위쪽에서 조그만 고등어에 밀려났니?

산꼭대기. 헉, 영어다.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영어다. 얼른 발걸음을 옮기는데, 성곽 구멍 안에 젖소가 웅크리고 있다. 너도 영어가 무섭구나? 동질감에 닭가슴살 하나 투척. 뿌듯한(?) 마음에 몸을 뒤로 돌리는데 어라! 고등어다! 거의 3주 만이다. 너, 배가 홀쭉한 거 보니 그때 불룩했던 배는 똥배였어? 반가운 마음에 닭가슴살을 건네다가 손가락 물릴 뻔했다. 지난번에 소극적이었던 건 배가 불러서였구나. 젖소가 뭐 떨어진 거 없나 다가오자, 고등어가 으르렁댄다. 이 녀석, 맹수다. 체구는 작은데 펄떡거리는 게 진정한 활어다. 고등어가 왔어요, 고등어가. 싱싱한 고등어가 왔어요! 닭가슴살을 하나씩 더 줬는데 젖소는 물고서 저만치 도망간다. 너는 덩칫값을 좀 해야 하지 않겠니? 조그만 고등어가 무섭냐? 고등어가 다시 으르렁댄다. 한 걸음, 아니 반걸음 살짝 나도 모르게 물러난다. 이 녀석, 걱정 안 해도 되겠다.

닭가슴살 두 개씩 먹고 휴식 시간. 고등어는 땅바닥에 철퍼덕 누웠고, 젖소냥이는 바위 쪽으로 슬금슬금 가더니 나비를 노린다. 세상에나. 그림책에서나 보던 장면을 직접 보게 되다니! 사사삭. 조심스럽고 빠르게 다가가지만, 나비는 훨훨. 첫 번째 시도 실패. 나비 다시 착지. 사삭, 사삭. 착. 앞발 공격. 나비는 또 훨훨. 바로 폴짝. 나비는 더 훨훨. 젖소는 근처 철제 가드에 충돌. 최종 실패. 소리 내어 비웃어 주고 싶었지만, 근처에 사람들이 있는 관계로 조용히 미소로 마무리. 젖소야, 넌 역시 멍... 갑자기 코에 벌레를 붙이고 못 찾는 녀석이 생각나 마지막 단어를 꿀꺽 삼킨다. 막상막하인가.
내려가려고 발길을 돌리는데 삼색이가 나타나 한쪽에 편하게 앉아 있다. 젖소 쟤, 네 남동생이지? 오빠일 리 없어. 쟤 좀 어떻게 해 봐라. 젖소 망신 다 시키고 있다. 냥글냥글. 평화롭게 하루가 저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