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로그를 이곳 하나로 통합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성격의 글을 여기 올리는 게 맞나 싶기도 할 때가 있다. 출판물에 관한 글도, 영화에 대한 글도 아니고 그것들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되는 글도 아니라서. 이 카테고리의 글은 더욱 그렇다.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되면서 집사 관점에서 썼던 육아 일기 같은 글들이 있었다. 그 글들을 바탕으로 여기선 고양이 관점에서 고양이 일기를 써 보려고 한다. 아주 장난 같은 글이 될 거다. 다른 사람을 고려한 게 아닌, 순전히 내 취향을 위한 글이다. 아주 고양이 같은 글. ***
난 고양이별에서 지구별 ‘대한민국’에 배정된 고양-202106... 냥, 번호가 더 있었는데 까먹었다. 고양이는 그딴 거 기억 안 한다. 세상에 기억할 거랑 궁금한 게 얼마나 많은데. 그딴 숫자 따위, 흥이다! 다만 지구별로 오기 전 내가 했던 선택은 기억한다. 딱 봐도 나이 많고 카리스마 넘치는 고양이님이 내게 물었다. 신체 나이는 몇 살로 하고 싶냐고. 나이가 많을수록 미리 주어진 경험과 지식은 많겠지만 내재한 병과 아픔도 많을 거라고 했다. 아픈 건 싫었다. 그래서 냅다 2개월이라고 대답했다. 고양이님은 고개를 끄덕하고서 나를 지그시 쳐다보더니 얘기했다. 운명이 너를 제대로 이끌어주길 빌겠노라고.
아 씨,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열받네. 무슨 예고나 좀 해 주던가! 갑자기 지구별로 뚝 떨어지는 바람에 배고파서 며칠을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길거리를 조심해야 한다는 건 알았다. 이상한 사람들도 있고,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버려진 고양이들의 자손들이 있었다. 그 고양이들은 사람들의 말을 잊었고, 같은 고양이들에게 적대적일 수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배고픔엔 뭔들 못 하겠냐? 아무나 쫓아가서 야옹거리면 사람들이 어딘가로 가서 먹을 거를 가져왔다. 졸졸 따라가 봤는데 문 위에 이상한 글자가 쓰여 있었다. 뭐냐, 저건? 글씨 다 알 수 있다며? 옆에 25는 알겠는데 앞에 저 둥글둥글한 건 뭔데? 암튼 그러다 웬 여자가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근처에서 나를 한참 지켜보던 사람이다. 오, 이게 운명이라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웬걸? 어딘가로 데려가더니 냄새가 심하다며 물로 씻기질 않나, 하늘색 옷을 입은 사람이 내 똥꼬에 뭘 찔러보질 않나. 앞으로 기억해 둬야 할 게 많긴 한데 이 일만은 절대 잊지 않겠다! 시간이 흘렀다. 주인을 찾아준다며 병원이란 곳에서 2주 정도 있었고, 다시 그 여자 집으로 돌아와 2주 정도 있었다. 그 4주 동안 내 이름은 ‘구월’이었다. 9월에 발견됐다고. 냥. 구월이로 지지고 볶던 어느 날, 어떤 남자가 찾아왔다. 바로 알아봤다. 고양이님이 말한 내 운명이구나. 근데 왜 이렇게 말랐냐? 여자야, 이 사람 길에서 사는 거 아니냐? 그럼, 운명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련다. 하지만 다행히 집에서 산다. 냐앙. 이번에 내 이름은 ‘월’이란다. 앞에서 ‘구’ 자만 날린 거 같은데. 이 아저씨 깊은 생각은 안 하고 사는 사람 같은데, 괜찮을까? 2021년 10월 9일. 내가 ‘월’이가 된 날이다. 지금은 10월 10일 새벽. 아저씨는 잠들었고, 눈앞엔 고양이 낚싯대가 있다. 저걸 물고 뛰어다닐 거다. 내 세상이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