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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여기에

난 고양이를 싫어했다. 어렸을 때 경험이 한몫했다. 키우고 있던 노란 병아리를 도둑고양이가 물어 갔거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머리만 달랑 떼어낸 몸뚱이를 대문 위에 올려놓고 사라졌다. 그걸 하필이면 또 내가 발견했고. 피가 있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그 선명하던 노란색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거부감은 30대까지 이어졌다. 삶에 치를 떨던 시절, 길고양이들을 볼 때마다 녀석들의 눈은 나를 기겁하게 했다. 묘한 색깔을 바탕으로 해서 세로로 쭉 그어진 검은 동공. 그 눈과 마주치면 마치 내 안의 모든 것들이 낱낱이 드러나는 느낌을 받곤 했다.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진 알겠지만, 하필 왜 고양이의 눈을 통해서였는진 지금도 모르겠다. 우주의 갈라진 틈을 떠올렸던 걸까?


고양이에 대한 이미지가 변한 건 30대 후반부터다. 사회적으로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했고, 무엇보다 내 태도가 고양이의 그것과 많이 닮아있었다. 경계하고 거리를 두고 영역이 있지만, 마음을 열면 한없이 마음을 쓴다. 고양이를 기를까 생각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실천에 옮기진 못했다. 펫샵에서 사들일 생각을 할 정도로 당시 내 인식은 아주 구식이었다. 오히려 다행이었지 뭐.


지금은 고양이와 함께 산다. 무슨 이유인지 코로나가 한창일 때 생후 2개월의 나이에 버려진 품종묘. 버려졌다는 걸 제외하면 나머지는 추정이다. SNS를 통해, 지자체가 만들어놓은 정식 루트를 통해 주인을 찾아보려 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내게 입양됐다. 입양 첫날, 밥솥 뒤에 숨은 걸 찾지 못해서 30분을 넘게 집안을 뒤졌을 정도로 조그맣던 녀석. 에잇, 내다 버린 사람이 있다면 넘어지면서 개똥에 코나 박아 버려라!


아직도 여전히, 고양이의 눈은 내게 신비롭다. 우주가 담겨있고, 누군가의 양심이며, 날카로운 관찰자다. 내 마음속의 고양이다. 무겁고, 무섭고, 무시무시하게 균형 잡힌 존재. 하지만 내 곁엔 현실의 고양이도 있다. 가볍고, 가소롭고, 가당치 않게 자신감 넘치는 존재. 이 아이는 나만을 담고, 나를 비추는 거울이며, 나만 바라본다. 역시 존재란 그 무게감을 예측하는 게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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