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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여기에
비누
대굴대굴  2026/05/04 09:27

지킬과 하이드처럼 글을 분리해서 쓴 적이 있었다. 이 글은 지킬이, 저 글은 하이드가. 완연히 달랐다. 지킬이 쓴 글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지만,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하이드가 쓴 글은 오로지 한 방향, 분노와 공포와 불안을 향해 내달렸다. 그때도 알았다. 둘 다 나임을. 하지만 현실에서 날뛰는 하이드를 마주한 뒤 난 내가 무서웠다. 받아들여야 했지만 당장은 그러지 못했고, 그래서 글에서나마 둘을 분리했다. 제대로 된 대처였는진 지금도 모르겠다. 다만 그 글들은 분출구의 역할을 했고, 나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돌아보게끔 했다. 그렇다고 외부의 문제를 해결하진 못했다. 그저 나를 추슬렀을 뿐.


손을 씻다 옆에 놓인 빨랫비누가 눈에 들어왔다. 기존에 쓰던 비누가 너무 작아져서 역할을 못 하면 새 비누를 꺼내고, 자그마한 조각들을 새 비누와 함께 사용하면 그 둘이 달라붙는다. 모두가 다 붙진 않는다. 어떤 것들은 붙어서 하나처럼 되고, 어떤 것들은 붙지 못하고 더 작게 바스러진다. 지킬과 하이드를 분리했던 이후의 삶이 새로운 삶은 아니겠으나, 그 이전의 흔적이 그 이후의 삶에 들러붙은 건 분명하다. 저 비누처럼. 나를 정의하고 나를 표현하고. 그렇다면 내게 들러붙지 못하고 떨궈진 무언가도 있을 법한데, 그게 무언지 아직 모르겠다. 떨어져 나간 것,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선택에 따라 버려진 것. 그 공백 또한 나를 정의하는 것이라면. 난, 모르겠다. 내가 누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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