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학교 1학년 때였나? 정확한 건 아닌데 아무튼 10살 되기 전이었다. 프로야구가 출범하고 인기몰이를 하자 구단들은 어린이 회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내가 원했던 건 MBC청룡. 하지만, 이 구단은 10살 이상이란 나이 제한이 있었다. 아니, 왜? 10살 미만은 어린이가 아니라 애새끼냐? (거친 표현은 죄송. 그 당시 난 화가 무척 많이 났었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가입한 게 OB베어스. (두산 팬들에게 죄송. 꾸벅) OB 점퍼 입고 MBC 응원했던 꼬맹이 시절.
누나가 결혼하고 집을 나가자, 그 방은 내 차지가 됐다. 그곳엔 침대도 있었고, 전축도 있었다. 하지만 전축은 그 후로 몇 년 동안 장식품이었다. 난 음악도, 라디오도 듣지 않았었으니까. 그러다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였나? 엄마가 나를 데리고 동네 레코드 가게에 가서 음반을 하나 고르라고 했다. 그때 가게 주인분이 추천한 가수는 이문세와 유재하. 내가 고른 건 이문세. 이유는 기억이 안 난다. 엄마는 턴테이블 사용하는 법, 라디오를 듣는 법, LP를 관리하는 법을 가르쳐줬고, 내게 새로운 세상을 하나 추가시켜 주셨다.
20대 초중반이었던가? 처음으로 혼자 영화관에 들어가 영화를 본 게. 그 후 난 영화에 푹 빠져 들었다. 장르도 가리지 않았고, 시대도 가리지 않았다. 글이라면, ‘오늘은 참 재미있는 하루였습니다’ 같은 일기에서 멈춘 상태였는데, 영화를 본 후로 감상을 적기 시작했다. 30대에 들어선 DVD를 사 모았다. <카우보이 비밥>은 그 시절 가장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이었고, <가을 소나타>는 내겐 무시무시한 영화였으며, 히치콕의 영화들은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영화였다.
미니언즈는, 아니, 미니언즈 미니어처는 편의점 이벤트에 당첨돼서 받은 상품이다. 편의점만 20년 가까이했지 아마.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생각을 했고, 많은 감정 소모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더 단단해졌지만, 한계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지금은, LG를 응원하지만, 화가 날 정도로 하진 않는다. 내게 많은 세상을 열어주셨던 분은 서서히 시간에 잠식되어 내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 되었고, 이젠 아릿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영화는 예전만큼 보지 않지만, 아직 이렇게 글은 쓴다. 분명 ‘오늘은 보람 있는 하루였다’ 수준은 벗어났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알바를 하러 왔던 아이들은 이제 30대 후반이 됐고, 누군가는 엄마가 돼서 자기 아이의 이름을 내게 알려줬다. 그리고, 고양이. 햇볕을 쬐던 녀석은 뭐가 궁금했는지 갑자기 창 사이로 머리를 들이민다. 벌레라도 본 건가? 이 녀석은 예측불허다.
멀리 창밖을 내다본다. 시간이 흐르면 이 풍경들도 바뀌겠지. 미래를 향한 문장은 짧을수록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