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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여기에

일주일에 한 번,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날. 쓰레기를 버리고 집으로 들어와 마루 한복판에 우뚝 선다. 이런. 주변을 둘러보지만, 없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베란다로 나가서 좌우를 살핀다. 역시, 없다. 안 좋다, 안 좋아. 등줄기로 땀이 한 방울 흘러내린다.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어본다. 마루로 들어와 다시 여기저기를 탐색. 그러다 무언가를 발견한다. 고양이의 네모난 박스형 종이 스크래쳐. 고양이는 그곳에 없다. 한참을 보다 결심한다. 그래, 저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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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 말이었다.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무척 더웠던 걸로 기억한다. 집에서 짐을 빼야 할 일이 있어서 한 달 가까이 생필품을 제외하곤 물건을 주문하지 않았다. 있던 짐마저 버리는 중이었고. 택배가 오지 않으니 당연히 상자도 생길 일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재활용 쓰레기를 일주일 동안 집안에 모아뒀다가 버려야 하는데 내 경우는 그것들을 상자에 분류해서 담아뒀던 것. 종이상자가 없으니 분류해 둘 곳도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게 고양이 스크래쳐. 박스 모양이라 무언가 담을 수 있었거든. 어차피 이 스크래쳐는 고양이가 잘 쓰지도 않았고.


그때의 결핍이 문제였을까? 요즘 베란다 한쪽에 쌓인 종이상자들을 볼 때마다 살짝 당황스럽다. 저렇게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나를 마주하고 있자니 여러 잡생각이 떠오른다.


종량제 봉투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나중에 저 상자에 쓰레기를 담아 버릴까? 안 되겠지?


상자를 못 버리는 거 보면 전생에 나, 고양이였을까? 근데 저 녀석은 상자 별로 안 좋아하는데. 저 녀석이 전생에 내 집사였나?


쓸데없는 생각 하다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자 괜히 머쓱해진다. 이 녀석, 거의 나를 감시하는 수준이다. 내 생각까지 읽진 못할 거야. 흠.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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