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면티만 입고 있는데, 여경이 ‘브래지어 벗으라’ 짜증”
서울 강남경찰서 심야연행 촛불여성 증언
일선경찰 “서울 상당수 경찰서에서 요구”
석진환 기자
황춘화 기자
.article, .article a, .article a:visited, .article p{ font-size:14px; color:#222222; line-height:24px; }
지난 16일 새벽 서울 마포경찰서에 입감된 여성이 속옷을 벗으라고 요구받은 사실이 드러난 데 이어 서울 강남경찰서에 연행된 여성들도 이런 일을 겪은 것으로 19일 확인돼 파문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인권단체 관계자들조차 “과거 유치장 입감 전 알몸 수색이 문제가 됐던 적은 있지만, 여성 입감자의 브래지어를 탈의시켰다는 이야기는 처음”이라며 “법과 원칙을 내세운 강경대응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인권단체들은 이번에 확인된 경찰서뿐 아니라 다른 경찰서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을 수 있다고 보고 과거 연행된 이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실제 마포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사건이 보도된 뒤 서울 시내 다른 경찰서들은 어떻게 하는지 확인해 본 결과 상당수 경찰서에서 여성 입감자들에 대한 브래지어 탈의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 왜 이런 일이 일어나나 “지난 15일 밤 9시께 경찰서에 연행됐는데, 퇴근한 여경을 찾아 불러내느라 11시 정도에 유치장에 입감됐다. 물대포 색소 때문에 온몸이 따가워서 씻게 해달라고 했는데, 경찰이 참으라고 하다가 (유치장) 안에 들어가면 샤워할 수 있다고 해서 참았다. 하지만 입감된 뒤 유치장 근무자는 ‘밤 9시 이후엔 물소리가 시끄러워 안 된다’고 했다. 여성이기 때문에 꼭 씻어야 할 이유가 있는데도 거절당했다. 결국 샤워는 다음날 했다. 여경이 브래지어를 벗으라고 하는 등 짜증을 내서 항의도 못했고, 나는 흰 면티만 입고 있는 상황이라 당황스러웠다.”
지난 15일 집회 때 서울 강남경찰서에 연행됐던 한 여성이 털어놓은 상황이다. 브래지어 탈의뿐 아니라, 연행된 여성들이 유치장에서 모멸적인 대우를 받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 시내 경찰서의 한 수사과장은 “시위 때는 경찰을 비판하더라도 유치장에 입감되는 개인들은 심리적으로 매우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수치심을 느끼더라도 브래지어 탈의를 당연한 절차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인권단체들은 정부의 강경 대응 기조가 일선에서 이런 문제를 낳았다고 비판한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위에서 엄격한 대응을 강조하면, 일선에서는 연행자들을 함부로 다뤄도 된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그는 “촛불시위에 제대로 대응을 못했다며 서울경찰청장을 교체했는데, 이를 지켜본 일선 경찰들은 당연히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 규정 명확하게 해야 이번 기회에 입감 규정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 업무편람에는 이른바 ‘유치장 사고 유형’으로 브래지어를 이용한 자살 사례, 칫솔을 이용한 자살 사례가 등장한다. 하지만 ‘유치장 위험 물품’에는 허리띠나 넥타이, 기타 자해 위험 물품이라고만 적시돼 있다. 서울 시내 경찰서의 유치장에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사고 유형에 나오는 대로 브래지어를 기타 위험 물품으로 보고 이를 수거하면, 칫솔도 위험 물품으로 분류해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며 “이번 기회에 규정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서 한 곳에 유치보호관 3명을 두고 있지만, 마포경찰서처럼 3명 모두 남성 경찰관인 경우도 있어 여성 유치인들이 불편을 겪는 일이 많다는 점도 문제다.
석진환 황춘화 기자 soulf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