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의 평론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은 뜻밖의 기쁨이었다. 이광수에 이은 김동인 염상섭 세명의 소설가가 근현대 소설사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어떤 형용의 말을 덧붙이더라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 세명 사이에서의 서로의 문학론에 대한 주장과 반론을 읽다보면, 그들의 생각과 지식의 깊이에 감탄하고는 한다. 특히 이중에 좋아하는 작가는 굳이 꼽자면 김동인 염상섭 이광수 순이 아닐까 싶다. (다 좋아하니까) 김동인의 소설을 처음 읽었던 것이 태형이었는데, 태형이라는 작품의 리얼리티는 염상섭의 만세전과 비슷하면서도 치열함이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예전에 아마 80년대에 김동인 평론 전집이 나온적이 있었는데 읽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 겨우 대학 도서관에서만 읽을 수 있는(품절,,,) 작품을 다시 찾아 읽으려니 곤욕스럽다. 지만지에서 시리즈로 평론가들의 선집을 묶어 나왔다는 것을 들었는데, 김동인의 선집을 읽다보니, 예전에 전집을 읽었던 기억이 어슴푸레 난다. 그러면서도 그때보다 읽기 수월한 것을 보니 시간도 시간이니와 아마 편집자의 수고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김동인의 평론은 현대소설이 나아가야할 모습을 구체적으로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고뇌가 엿보인다. 특히 이 선십 초반에 실린 염상섭과의 논쟁과 함께 톨스토이로 이어지는 그의 평론은 비평이라는 영역에 대한 그의 생각이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작가와 독자 그리고 그 사이의 매개로서의 비평활동이라는 공식 속에서 비평은 비평 스스로 하나의 문학으로서의 역할을 지니고 있는 독립영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비평이 아예 작가와 독자를 떠나있다는 것은 아니다.) 선집에 실려있는 작품을 차근차근 읽다보면, 현대의 비평의 역할에 대한 논의와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