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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사변을 통한 서구로부터의 탈출시도
(개인적 혹은 민족적 자아 찾기)
-최인훈의 '회색인'
최인훈, 그는 평소에도 개인적으로 존경해 마지않는 작가다. 1학년 초 그의 장편 소설 <광장>의 마지막 장, 마지막 글자를 다 읽는 순간부터 그는 나에게 있어 '우상'이 되었다.
그후 그의 단편 'grey 구락부 전말기', '하늘의 다리', '7월의 아이들', '국도의 끝' 등을 읽어 오면서 그는 신이 존재하지 않았던 내 가슴 한복판을 차지했다. 이번에 읽은 '회색인'은 이러한 나의 생각에 믿음을 한 꺼풀 더 씌워 주었다. '광장'이나 '회색인'같은 역작이 최인훈의 20대 시절에 쓰여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가 '우상의 집'에 서의 우상이 아닌 참 우상의 모습으로 내 안에 존재하기에 충분한 근거가 된다.
<회색인>은 에고를 찾기 위한 끊임없는 사변의 기록이다. 작품에서 독고준은 개인적인 자아를 성립시키기 위한 관념적 노력을 기울인다.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모든 인간이 신이다.'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써가면서 그는 외부로부터 자아를 환원시키려 한다.
이를 바탕으로 작가는 서구에 의해서 희생된 민족의 자아를 되찾기를 원한다. 그는 역사의 우연에 의해 일본이 서구로부터 위협을 모면하고 허황된 신을 내세워 우리 나라를 침탈했다고 본다. 그리고 이후에 서양(구소련과 미국)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우리 민족이 희생되었음을 말한다.
일본에 의해서 우리의 전통이 단절되었고, 서구에 의해 그것이 더욱 엉망이 되었다는 사실을 통탄하면서 그는 전통의 회복을 부르짓는다. 그가 가장 경멸하는 것은 서구의 이데올로기다. 그에게 있어 증오의 대상은 북한이나 남한이 아니라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이데올로기다.
그것들이 얼마만큼 훌륭한 가치를 지녔던 간에 그러한 사상은 그들의 땅에서 나왔고 그들의 땅에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이러한 생각은 그의 또 다른 장편인 '광장'에서도 나타난다. 이명준이 선택한 나라는 북한도 남한도 아닌 제 삼국이다.
하지만 그것마저 그에겐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이렇게 서구에 대한 피해의식에서 기인한 반감은 극렬한 모습으로 분출되긴 하지만 구체적인 대안이 되지는 못한다. 단지 민족의 에고를 되찾자는 관념적인 목소리뿐이다.
그래서 독고준이 선택한 삶 역시 방관자적인 사변의 연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회색인'에서 그는 김학과의 대조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한국에서의 혁명은 지배세력의 가면을 바꿔 씌우는 식에 불과하다는 독고준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관념적인 것이다. 민중들의 피가 희생된 '혁명'의 결정체가 아닌 서구에서 들어온 '사상'으로서 존재할 뿐이다. 그러므로 한국에서의 '혁명'은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다. 하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최인훈의 여러 작품들 중에는 이렇게 역사의 우연이 던진 서구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가득 차 있는 작품들이 많다.
<회색인>을 읽으면서 나를 느꼈다. 나는 독고준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어쩌면 작품을 읽는 도중 그에게 매료된 나머지 그런 삶을 지향하는 마음이 은연중에 생겨 그와 나를 동일시하고 싶은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드는 지도 모른다. 독고준은 완벽한 인간은 아니다.
방관자적이고, 사변적이며, 자신의 안락을 위해 공갈협박을 하고, 성욕으로 순수한 여자까지 잃는 사람이다. 분명 그는 보편적 기제에 근거할 때 본받을 만한 인물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 60년의 청년에게 99년을 살아가는 내가 그렇게도 맘이 끌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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