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산 이유는 다른 많은 사람들과 비슷하다. 영화를 봤는데 도무지 해석이 안되는 부분이 많아 원작을 참고하고 싶었고 더불어 원작과 영화를 비교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나는 영상세대가 아닌지라 책과 영화를 둘 다 보고나면 주로 책 쪽에 점수를 많이 주는 편인데 이번에도 영락없이 그러하다.
그러나 1편은 영화의 이미지가 저절로 떠올려지면서 독서를 방해(?)하는 바람에 마음껏 즐겨지지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생각만큼 흥미진진하지는 않았다. 극적인 줄거리로 감탄하게 하는 내용은 아니다. 이 소설의 매력은 전혀 영웅적이지 않은 개성만점의 주인공들이, 전혀 영웅적이지 않은 행동과 멋지지 않은 발언들을 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는 점이다.
하울만 해도 디즈니식의 용감하고 근사한 정의의 사나이도 아니요, 그렇다고 우수에 찬 분위기 있는 남자도 아닌 것이, 외모지상주의 왕자병 말기에다가 될 수 있으면 어려운 일은 안 하려고 하고 예쁜 여자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는 바람둥이인 것이다. 여주인공 소피도 예쁘지도 않으며 한성깔 하는데다가 맏이 컴플렉스까지 있고 거기다 결정적으로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할머니로 있어야 한다. 이런 둘의 로맨스는 전혀 로맨틱하지 않으나 우리가 로맨스에서 바라는 것이 어디 로맨틱 뿐이던가.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는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이 꾀까다로운 바람둥이 청년과 겉모습이 할머니인 소녀와의 치고 빠지는 투닥거림에서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것도 그런 종류이다.
그런 매력은 2편에 이르러서 극대화되는데, 2편은 1편과는 전혀 다른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양탄자 상인 압둘라와 공주 밤의꽃. 압둘라를 볼짝시면, 작은 가게를 차려놓고 매일 자기가 사실은 왕자라는 공상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내는, 겉으로 보기에 전혀 매력적일 게 없는 인물이다. 이런 그가 공주를 구하는 방법은 죽음을 무릅쓴 용기와 뛰어난 무술실력이 아니라 '말빨'이다. 그가 사는 진지브라는 도시는 굉장히 예의와 체면을 차린 말투를 사용하는데 거기서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온 압둘라의 말솜씨는 너무도 화려하여, 나중에는 그의 언변을 감상하는 즐거움에 책장을 넘길 정도였다.
"아으, 정령 중에서도 자수정 같은 정령이시여, 팬지꽃보다 더 고운 빛깔의 정령이시여....."(호리병에서 나온 정령에게 한 말)
"아으, 길가의 보석이시여, 여인숙의 한떨기 꽃이시여...."(여인숙의 여주인에게 한 말)
"아으, 참으로 눈부신 양탄자야, 홍옥 같고 귀감람석 같은 양탄자야, 이 미천하고 얼빠진 촌놈이 네 고귀한 얼굴에 크림을 쏟고 말았으니 내 깊이 사죄하지 않을 수 없고...."(마법의 양탄자에게 한 말)
한마디로 말해서 이 소설은 우리에게 별다른 교훈을 강요하지 않는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이야기다. 영화는 여기에 뭔가 의미부여를 하려 했으나 나는 이대로가 좋다. 새롭고 신선한 인물들과 그들이 하는 결코 전형적이지 않은 행동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그리고 그들은 전혀 착한 척, 멋있는 척 하지 않으나 알고 보면 꽤 괜찮은 인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