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를 보면 책의 줄기를 알 수 있다. 이 책은 우주론에서 출발하여, 지구의 탄생, 생명의 출현, 인간과 문명의 등장으로 굉장히 거시적인 주제들을 다룬 후, 인도 철학, 도교와 유교, 불교, 서양철학, 기독교 순으로 종교와 사상을 다룬다. 이처럼 거창한 주제들을 다룬 끝에 저자는 우리 각자는 각자의 세계관에 매몰되어 살지만 그럼에도 세계와 자아는 하나라는 일원론을 명심하라고 말한다. 마지막에 스스로를 돌이켜보라고 조언도 건넨다.
이 점에서 이와 비슷한 주제와 양상을 띠는 책을 하나 제시하자면 『내면소통』을 들 수 있겠다. 차이점이 있다면 『내면소통』은 최신 뇌과학과 우주론을 바탕으로 자아와 우주의 관계를 달리 생각하게 만든다. 정확히는 자아 역시 우주의 일부라는 것. 나아가 자아와 우주 사이의 소통(정확히는 '나'의 여러 자아들 간의 소통) 수단으로서 명상의 중요성 및 어떻게 명상을 할지 그 방법을 제시한다. 『내면소통』의 지적 수준은 아주 깊다고 감히 평할 수 있겠다.
다시 이 책으로 돌아와서, 참으로 제목에 충실한 책이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이 제목이 책의 전부를 함축하고 있다. 말그대로 넓고 얕다. 이 책이 제시하는 지식은 태평양처럼 넓지만 수위는 발목에 차오르는 수준인 바다에 비유할 수 있겠다. 그만큼 방대한 지식을 다루기 때문에 독자로서는 처음 보는 지식을 접하고 압도당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만큼 얕다. 이 책의 방대한 지식이 파고를 일으키지만 막상 그 파고의 높이는 발목 복사뼈 근처에 불과하다. 이 책의 지식만 믿고 전문가 앞에서 지적 대화를 하겠다고 설치다간 바로 얼치기 취급을 당할 것이다. 물론 천문학자 앞에서 종교와 철학 이야기를 꺼낸다거나, 스님이나 목사 앞에서 과학 얘기를 꺼내면 그들을 압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게 의미가 있을까? 과학자나 성직자는 따지자면 셜록 홈즈 같은 사람들이다. 홈즈는 왓슨에게 태양계에 대한 지식을 전해듣더니, 추리할 때 필요한 지식이 아니라며 바로 잊어버린다.
반대로, 이 책의 평가에서 중요한 지점은, 귀한 시간을 들여 이 두꺼운 책을 읽은 후 타인과 교양인 대 교양인으로서 지적이며 교양이 넘치는 대화가 가능할 것인가? 일 것이다. 일원론을 중심으로 종교, 과학, 철학의 여러 주제들을 엮으면서 세계와 자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은 높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종교와 과학에 대해 다소 편향된 관점을 가졌던 독자들에게 이 책은 색다른 관점을 제시하여 독자가 매몰되거나 편향된 세계관에서 빠져나올 여지를 마련해준다는 점도 이 책의 가치를 높이는 지점이다.
다만 저자가 의도하는 대로 타인과의 대화에서 교양있는, 지적 대화가 가능할까는 회의적이다. 처음에는 거창한 우주론으로 시작하다가도 나중에는 시덥잖은 이야기로 흘러가는게 대화다. 그런데 저자는 서로 다른 사람들 간의 원활한 대화를 위한 공통분모로서 교양을 강조한다. 하지만 개개인마다 교양과 지적 수준이 다르지 않는가? '나'보다 더 많이, 잘 아는 박학한 사람은 세상에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렇긴 하나 사실 이 문제는 개개인에게 달린 문제라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한 개인이 어떤 집단에 속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너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책의 진짜 문제점들은 사실 다른 곳에 있다. 지적 대화를 위해서는 계속 부단하게 지식과 교양을 쌓는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책 하나에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담기란 불가능하고, 그런 책이 있더라도 인간이 정신적으로 소화시킨다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먼 미래에 두뇌와 컴퓨터를 연결한다던가 하는 상황이 펼쳐지면 또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든, 다른 책이든 간에 독자가 어떤 지식에 흥미를 품게 만들었다면 그 다음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알려주는, 독자를 위한 배려를 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이 책의 약점이 드러난다. 간단히 말해 책을 읽고 난 후 갈피를 잡게 해줄 지침이 이 책에 부족하다는 것이다. 물론 능동적인 독자, 지식에 목마른 독자라면 알아서 잘 할 것이다. 그런데 모든 독자가 그런 것은 아니지 않은가?
참고문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참으로 방대하다. 그에 비해 참고문헌은 단촐하다. 아울러 더 읽을만한 책 목록을 제시할 법 한데 저자는 그러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푸념처럼 들릴 수 있겠다. 그렇긴 한데 각 장마다 중간 정리, 최종 정리 장을 따로 할애해서 복습하는 장은 꼼꼼하게 넣어놨으면서, 이 책을 보고 지식을 갈구하려는 독자들이 다른 책으로 넘어가고 싶을 때 쉽게 넘어갈 수 있도록 '더 읽을 도서 목록' 같은 것은 제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소 의아하게 다가온다.
다른 문제점을 꼽자면 얕은 지식의 문제를 들 수 있겠다. 우주론이든, 철학이든, 종교든 간에 그 방대한 영역을 불과 수십페이지로 압축했기 때문에 그 깊이가 얕아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위에서 참고문헌이나 더 읽을 목록을 운운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저자가 워낙 많은 정보를 책 하나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많은 내용을 처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축약은 반드시 오해를 초래한다. 특히나 같은 사실을 두고도 논쟁이 첨예하게 벌어지거나 해석이 갈리는 지점이라면 더더욱.
그런 오해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최소한 오해가 일어날 가능성을 낮추려면, 독자에게 교양과 지식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독자가 오해하지 않도록 본문에서 주의를 주거나, 다른 책 목록을 첨부해서 독자가 관심을 계속 이어나갈 여지를 제공해야 한다고 본다. 이 책이 아무리 좋은 책이라하더라도 독자가 이 책 하나만 읽고 거기에 머무르면서 아무런 지적 여정에 나설 생각을 품게 만들지 못한다면, 결국 저자의 의도도 퇴색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