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 독서는 머리로 하는 여행이라고” 했었는데, 깊이 읽는 여덟가지 복 정독은 즐거운 여행이었다.
여덟가지 복을 정독 전에 팔 복을 묵상하거나 필사하면 우리나라 초대 교회 믿음의 선배들과 박해(9장) 가운데 신앙생활을 하는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이 생각나기도 했고, 생명의말씀사 발행 라이브성경 사전에는 산상보훈의 대상을 다음과 같은 설명하는 것을 보았다 - ① 천국 복음을 듣고 회개한 자들에게 주어진 설교다(마 4:17-22). ② 예수를 좇는 제자들에 주어진 설교다(마 5:1). ③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있는 설교다(마 4:19; 7:28-29; 28:19). - 그래서 즐거운 여행 전 팔 복에 관한 생각들(궁금했던 것)과 『라이브성경 사전』의 내용을 감상평에 포함하였고 이어지는 감상평에 믿음의 선배들과 북한 지하교회를 언급했다.
팔 복의 핵심은 무엇일까?
저자는 팔 복의 핵심을 하나님을 보는 것으로, 보고 경험하며 함께 하는 것이며 마음이 청결한 자가 받는다고 마음이 청결한 자가 받는 복이 팔 복 중 최고 라고 말한다. (제7장)
그러면 산상 수훈의 핵심을 넘어 기억하고 되새겨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다름 아니라 팔 복의 조건에 따르는 보상의 약속들이 우리가 쟁취해야 하는 보상이 아니라 천국 백성들이 누릴 은혜의 선물이며, 인격적인 특징이라는 것이다 (제7장 171페이지)
팔 복의 말씀을 되새기고 기억하기 전에 ‘그릇되게 해석하거나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가장 많이 誤解(오해)를 받은 행복, 즉 그릇되게 해석하거나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것, 또는 그런 해석이나 이해에 대하여 평화라고 주장하면서 그 이유를 세상이 가르쳐준 평화의 개념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알려 주고 있다. (제8장)
시 1편의 말씀과 마태복음 5장 1~12절의 팔 복이 어떻게 다르고 또 같은지 평소 궁금했는데, 저자는 제2장 『인간의 행복』에서 (34 ~36페이지) “ 꼭 닮았다. ” 라고 설명한다.
더하여 팔 복을 反芻 (반추)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는데, 邪學罪人 (사학죄인)으로 숙부가 참형을 당한 이수정이다. 이수정이 생각나는 이유는 숙부의 처형으로 서양 종교인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이 참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윤동주 시인과 정지용 시인의 모교인 도시샤(同志社) 대학(일본 교토) 동창회관 니지마(新島 襄) 기념관에 소장 되어 있는 산상설교 액자(유학 당시 쓰다센의 서재에 있었던)를 보고 결국엔 세례를 받고 성경을 번역했기 때문이다. 그가 번역한 성경(신약 마가 전 복음서 언해 (新約 마가 傳 福音書 諺解))을 가지고 1885년 4월 5일 오후 조선 땅 제물포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도착했다.
팔 복이 오늘의 우리와 한국 교회가 존재하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저자는 “ 팔복산을 오르십시오. 불붙는 사랑으로 만나 주실 것입니다. ” 라고 권면하고 있는데(제1장, 25페이지) 우리보다 먼저 팔복산에 올랐던 선각자가 이수정이었다. 휴전선 넘어 북녘에서도, 우리들의 터전 대한민국에서도 팔복산에 올라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주의 백성들의 기도와 찬양이 충만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흥미로운 단락은 제4장 98페이지이다.
“ 그것은 곧 구원받은 신자가 땅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누리게 되었으니, 이제 새로운 방식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세상에서 살고 있으나 세속으로부터 하나님을 향하여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다. 이로써 하나님의 통치안에서 참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
이 단락이 매우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은 다름 아니라 믿음의 선배들의 역사 때문이다. 1938년 9월 10일 장로교총회 후 신사참배&우상 숭배를 한 곳이 평양 신사인데 놀랍게도 평양 신사의 신(神) 가운데 하나가 국혼 대신(國魂大神)으로 국혼 대신은 식민지에 신사를 보급하기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신이었고 땅에는 신령이 있다는 일본 신도 논리에서 만들어낸 가상의 토지 신이다.
온유하여 기업으로 땅(땅은 곧 그리스도)을 받아야 할 교회 지도자들이 새롭게 만들어진 가상의 토지 신에게 굴복하여 전혀 새로운 삶의 모습이 아닌, 참된 안식을 누리지 못한 것이며, “ 복음은 애통하는 신자들의 눈물을 타고 세상에 흘러갑니다. ” (제3장 63페이지)라고 하는데,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여 베푸신 은혜를 저버린 것이다. (욘 2:8)
대조적으로 2019년 받은 북한 지하교회 성도 편지에는 새로운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어 행복하다.
저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참다운 사랑에 언제나 진심으로 아버지를 사랑해야 하며 독생자까지 보내주신 그 사랑으로 살아계신 주님의 복음을 죽으나 사나 선포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2019년 받은 북한 지하교회 편지에서 발췌>
“ 의에 주리고 목마르면서도, 긍휼히 여기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된 표입니다. ” (제6장 141페이지)에서는 잠시 숨을 고르며 하나님 나라와 그 나라의 백성들을 묵상했다.
자식들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너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신 주님 말씀의 참뜻을 깨닫지 못하고 리기적인 마음으로 아버지 앞에 간구한 다 욕한(주:욕심 많은) 저를 부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2019년 받은 북한 지하교회 편지에서 발췌>
그리고 여덟가지 복을 정독하며 더 알고 싶어진 것은 부패와 부정-불의를 어렵지 않게 대면하기도 하는 현실에서 성경에 공의, 정의로 소개되고 있는 단어들(문맥에 따라 다르게 번역되기도 하겠지만)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상호관계이다. 제5장에서는 정의와 공의에 대한 설명은 보이지 않는다.
“ 교회는 십자가의 목재로 지은 방주요, 그 운행은 순교자의 피로써 되어왔다. (성서 조선, 함석헌, 1936. 1월 84호) ” 제9장 박해받는 자를 읽으며 되새기게 된 믿음의 선배의 글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의로운 삶을 포기하지 않아 박해를 견뎌낸 모습이라 생각된다.
즐거운 여행을 마치면서 중국&북한 등 박해와 고난의 땅에서 팔 복의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간구하는 성도들과 전 세계적인 유행병으로 고통 가운데 있는 신자들에게 꽃길만 걷는 팔 복의 사람은 없음이(제10장) 크나큰 위로이기를 기도한다.
경건한 자에게 박해는 선물입니다. 249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