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 작은 독서모임 – 프리다 쉬베크
언제고 독모활동을 딱 60살까지만 하고 싶다 공표한 적이 있다. 정확하게 40살부터 시작한 독모를 더도, 덜도 말고 딱 20년만 건강하고도 즐겁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기한을 정해두는 이유는 그것에 목적을 두고 지금의 이 활동들을 쉼 없는 노젖기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말은 다 못하지만 어떤 직업이나 늘 빛과 어둠이 존재하고 나 또한 온전한 욕구로 책을 읽는 것만은 아니기에 어느 지점, 그러니까 잔잔한 물길에도 회오리가 감겨 물살이 엉킬 때면 이 일에 대한 회의와 무력감이 곧잘 엄습한다. 그런 나에게 60살이라는 나이는 그런데도 휘감아 돌아나가는 물살을 다시 앞으로 밀고 나아가는 힘을 만들기에 안성맞춤인 나이였다.
그럼, 60살 이후에는?
어느 인생이나 마찬가지다. 돌이켜 자신의 삶이 그저 잔잔하고 평탄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이 몇 명이나 될까.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눈앞에서 잃어보기도 할 것이고, 누군가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다시 삶을 얻기도 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안고 하루하루를 고군분투했을 것이다. 또 뾰족이 험한 일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시간 속에서, 그 노선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일과 감정을 겪었겠는가. 그런 모든 시간을 시나브로 보낸 후 그들에게 남은 건 과연 무엇일까나.
여기 이 작은 마을에 ‘모나의 책이 있는 B&B’가 있다. 그곳에는 낡은 책들이 버려지지 않고 쌓여있고, 아무렇게나 쌓아둔 것 같은 책은 사실, 책을 책으로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작은 그리움들이었다. 각자의 풍파를 헤치고 다시 모인 그녀들 앞에는 수십 번을 읽었던 책 <오만과 편견>이 있고, 책모임이라는 공간에서 각자의 삶을 어루만져준다. 이 책은 미스터리를 외피로 두르고 실종된 매리언(35년 전 사라진 여동생)을 찾아 나선 퍼트리샤의 이야기로, 시종일관 매리언의 그림자를 쫓게 만든다. 매리언이 사라진 지역에 도착한 퍼트리샤는 아담한 호텔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독서모임에 초대받는다. 그녀를 환대해 맞이한 그 곳의 여성들은 사라진 매리언을 찾을 수 있게 각자의 앎을 공유하고 끝내 구겨졌던 한 귀퉁이가 펴지자 읽어내지 못했던 한 장의 페이지가 활짝 펼쳐진다.
호텔 주인의 모나의 딸 에리카의 슬럼프, 별난 할머니가 되어 폐쇄적이고 성질 많은 에뷔와 그녀들 곁의 도리스, 마리안네까지. 등장인물들 각자가 특별한 사연들을 가지고 책들에 둘러싸인다. 하릴없이 책을 읽지만 하릴없이 독서모임을 하지는 않는다. 독서모임이 가진 원초적인 ‘아늑함’을 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려볼 수 있었다.
독모 중 그런 말을 했었다. 나이가 들어서 진짜 독서모임을 하고 싶다고. 그럼 지금 하는 건 가짜야? 싶겠지만 나에게 진짜 독모는 그런 것이다. 60살이 넘어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진짜 독모를 하고 싶다. 그때는 찐 책벗을 가까이에 두고 그간에 읽은 책들로 다져진 달큰하고도 쫀쫀한 사유들을 각자의 접시에 올려놓고 그것들을 나눠 먹으며 시간을 염두에 두지 않고 함께 마주하고 싶다. 그렇게 온 하루를 서로의 접시를 비워내고 그것으로 각자의 배를 두드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그런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벌써 심장이 벌렁거린다. 남은 삶을 그렇게 진짜 책 이야기, 진짜 깊은 사유로 채워 사라져가는 삶의 영역들을 대신 하고 싶다. 그것이 ‘세상의 끝’에 다다른 내가 진정으로 삶을 사유하는 방식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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