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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지이님의 서재
  •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 박준
  • 10,800원 (10%600)
  • 2012-12-05
  • : 29,674
나는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밑줄을 쳐놓거나 페이지를 접어두곤 한다. 어제밤을 가득채워준 이 시집은 책 전체를 접어놓고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다.

p49
환절기

나는 통영에 가서야 뱃사람들은 바닷길을 외울 때 앞이 아니라 배가 지나온 뒤의 광경을 기억한다는 사실, 그리고 당신의 무릎이 아주 차갑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비린 것을 먹지 못하는 당신 손을 잡고 시장을 세 바퀴나 돌다보면 살 만해지는 삶을 견디지 못하는 내 습관이나 황도를 백도라고 말하는 당신의 착각도 조금 누그러들었다

우리는 매번 끝을 보고서야 서로의 편을 들어주었고 끝물 과일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입술부터 팔꿈치까지 과즙을 뚝뚝 흘리며 물복숭아를 먹는 당신, 나는 그 충농같은 장면을 넘기면서 우리가 같이 보낸 절기들을 줄줄 외워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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