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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ent blue
에스터는 여전히 그의 남자였던 라요스에게 운명처럼 이끌린다. 그 이끌림은 풋풋한 젊은 날의 설레임도 아니고 목숨을 바칠 정도로 서로를 열렬히 원하는 애절함도 아니다. 모든 것에 무던할 수 있는 마흔 중반의 여자. 그녀는 한시도 잊을 수 없는 그의 존재를 숙명처럼 느끼고 받아들인다. 과거의 형부이자 자신의 남자인 라요스가 설사 인간 말종이라 하더라도. 라요스는 젊은 날부터 야비한 협잡꾼에 지나지 않는다. 삶이 거짓일 수밖에 없는 남자. 겉은 번지르 해 보이고 처음 만난 사람들의 마음을 녹일 줄 알면서도 그저 말 뿐인 남자. 그가 이십년 만에 에스터(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으로 -유언-은 시작된다. 소박하지만 기쁨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에스터는 시간이 흐른 만큼 그가 변했을 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으로 (협잡꾼의 모습이 아니라 빚을 갚고 사죄를 하려는 모습) 설레인다. 그러나 설레임도 잠시 그녀는 청년기 어디선가 성장을 멈춘 듯한 철없는 그를 다시 한번 맞이한다.

헝가리의 문호인 산도르 마라이의 -유언-은 익숙한 동시에 내밀한 관계에 대한 작품이다. 그러나 에스터가 마지막까지 그런 인간에게 희생한다는 대목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쉽게도 보이는 대로만 읽어나갔지만, 분명 다른 방식으로도 읽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가슴 속에 시린 상처들로 가득한 여자의 고백을 듣자니 괜히 우울해 진다. 아마도 어느 그룹에서건 꼭 들어 있는 라요스와 같은 인간형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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