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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님의 서재
  • 화해하기 보고서
  • 심윤경
  • 9,720원 (10%540)
  • 2011-10-17
  • : 4,701

소설가의 동화 쓰기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시인이나 동화작가가 소설을 쓰는 것이 그러하듯이.  성인문학을 하는 작가는 소설만 쓰고 아동문학을 하는 작가는 동화만 써야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건 어디까지나 작가 개인의 선택에 달린 것일뿐. 그 선택의 이유가 생계 때문이든 문학적 욕구 때문이든.

그러나 이런 일반론을 지나 구체적인 현상으로 다가가면 일정한 편견이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간 소설가나 시인 몇몇이 쓴 동화에 대한 평가 때문이다. 그들의 동화, 혹은 '어른을 위한 동화'는 과연 아동문학에 도움이 되는 빛나는 성과였던가.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데에서 편견은 생겨난다. 자칫 감정적으로 흐르면 영역 지키기의 몸짓으로 비칠 수 있으나, 그리고 실제 그런 폐쇄적인 영역  지키기는 어느 장르를 막론하고 다소간 깔려 있는 정서이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영역 파괴를 성공적으로 이룬 작가는,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이 편견을 외면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소설가의 동화쓰기가 소설에 비해 큰 성과를 내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로는 동화라는 문법을 깊이 탐구하지 않은 점과 동화를 얼마쯤은 쉽게 보았다는 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것과 진지하지 않앗다는 것. 자신들이 소설에 대해 했던 것과 비교하면 더욱 뚜렷할 이 차이가 작품 성과의 차이로 나타난 것이다. 일반인들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그 '동화적'으로 접근한 탓도 있을 게다. 사실 동화는 동화적이지 않다. 패착은 여기에 있있던 것.

 

그럼에도 어떤 소설가의 동화 쓰기에 우려보다 기대가 앞선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소감이다. 나에게는 <나의 아름다운 정원> <달의 제단>< 이현의 연애>가 전부인 소설가 심윤경이 이에 해당한다. 왜냐. 내가 그녀가 지은 세 편의 소설을 읽을 때 썩 즐거웠기 때문이다. 세 편 모두 책 읽기의 즐거움을 준 작품들이다.

그녀의 소설은 아름답다. 화려하지 않으나 정갈하고, 감성을 자극하나 단정하고, 진지하되 지루하지 않다.  트렌드를 뒤쫓지 않고, 당차고 야무지게 자신의 세계를 보여준 작가다. 있어야 할 것과 있어서는 안 될 것을 정확히 분별하여 빈틈을 보이지 않는 문장과 맛깔나게 하는 호흡, 시종 중심을 잃지 않는 자세까지. 오래 전에 읽어서이기도 하지만 나는 그녀의 약점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대신 장점은 이처럼 나열할 수 있다. 너무나 편파적이게도 나는 그녀의 매력만 기억한다.

 

 소설가 심윤경이 처음 쓴 동화 <화해하기보고서>는 역시 심윤경의 이미지를 배반하지 않았다. 짧은 단문의 호흡으로 또박또박 이야기하는 그녀의 음성이 들릴 듯하다. 동화를 써도 그녀의 문장은 그녀의 것이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동화같은 소설이 아니라 정말 동화를 썼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육아의 경험이 얼마쯤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엄마와 아이가 다툰 후에 화해하기 보고서를 쓴다는 설정은 나름 새로웠고, 전개 방식이나 속도 또한 나무랄 데가 없이 깔끔했다. 

그러나 거슬리는 점도 눈에 띄었다. 특히 마무리는 여간 아쉽지 않앗다.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는 없다.  엄마가 자기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깨닫고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며 화해에 이르는 것은 일상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게다가 이모가 얄미웠다는 대목처럼 그 앞에 아이의 심정이 변해가는 과정도 설정해 놓았다.  그럼에도 찜찜했다. 울음 때문일까. 너무 뻔한 마무리짓기가 아니었나 싶다. 뻔한 결말이라 해도 다른 방식으로 보여줬어야 하지 않나. 줄곧 팽팽했던 긴장감이 허물어지는 느낌. 억지는 아닌데, 현실로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잇는데, 이야기로서는 미흠하다.

또 하나. 아이를 속옷만 입혀 대문 밖으로 내쫓는 설정은 뜨악하다. 물론 그로 인해 사건의 심각성과 긴장이 생긴 것이긴 한데, 그렇게 애를 내쫓아도 되나. 아동 학대에 해당하는 짓이지 않나. 만약 엄마가 아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 선생님이 그렇게 했다고 생각해 보면 너무나 명백하다. 잘못으로 쳐도 알림장 안 쓴 것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잘못의 균형추가 이미 기울어져 있다. 비슷한 수준의 잘못으로 대립되어야 해결도 화해도 원만한 것 아닌가. 이런 문제에 대해 둘 다 똑같이 잘못했으니 화해하자는 건 또다른 폭력이다. 

물론 현실에서 부모의 아이에 대한 폭력적인 행동은 드물지 않다. 아니 흔하다 할 것이다. 그것을 폭로하고 문제제기하는 설정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선 엄마가 그건 너무 심했다고 인정하는 선에서 지나갈 뿐 엄마의 잘못이 심각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잘못이긴 하지만 어쩌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정도랄까. 이 작품은  엄마와 아이의 팽팽한 신경전 속에 서로를 인정하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 과정이야말로 이 작품의 존재 이유라고 보면, 그 설정은 과했다.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잘못된 설정이다.  게다가 이건 작품 전체의 의미를 흔들어버릴 수 있는 수준의 문제라서 더욱 아쉬움이 크다. 작가의 경험인지는 모르겠으나 작품은 달라야 한다.

작은 흠. 머릿말 제목이'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다. 책을 펼치자마자 눈에 들어온 그 제목 보고 자뻑이 심한 거 아닌가 오해했다. 내용은 너희들 이야기가 진짜다. 뭐 그런 정돈데, 굳이 그런 제목을 달아야 했을까. 편집자가 그랬는지 작가가 그랬는지 암튼 거슬리는 제목이다.

 

그래도 소설가가 동화를 쓰려면 이 정도는 쓰면 좋겠다. 이 작품이 하나의 기준점이 될지도 모르겠다. 심윤경의 다음 작품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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