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다가가기, 그 흔적을 따라가기는 확실한 죽음의 명백한 징표이다… 결국 작품은 더는 어쩔 수 없이 홀로 무한 속의 여정을 이어간다. 그리고 어느 날 작품이 죽는다. 세상 모든 것이 죽듯이… 그리고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이 꺼지듯이.”
- 로베르트 볼라뇨, 『야만스러운 탐정들』
서두의 이 글귀는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이 걸어가게 될 여정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오래전 비평가들의 공격을 받고 사라진 ‘얼굴 없는 작가’ T.C 엘리만과 그의 작품의 생성 기원을 찾아가는 젊은 작가 디에간의 여정이 주요 골자라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전개와 분량 면에서 일주일이면 충분히 읽겠다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중간 중간 책을 덮어야 했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들을 소화시키는 여정이 더 길었다. 문학의 본질과 본령, 폐기 후에도 여전히 살아남아 풍문으로 세계를 떠도는 책의 기이한 물성, 상처 입은 작가의 자의식, 식민주의의 흔적이 여전한 시대, 변방 작가들이 겪는 고뇌, 세네갈의 정치적 문제 등 굵직한 테마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무엇보다도 마음을 끈 건 이 책이 작가와 작품이라는 테마의 가장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살아가면서 오직 한 권의 책을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고 말한다. 이는 엘리만의 『비인간적인 미로』가 신비성과 주술성을 넘어 그의 삶 일부였고, 결국은 그로 하여금 -고통스러울지언정- 자신의 삶을 살아내게 했음을 보여준다.
대개 작가의 창작 행위가 신비적인 면을 가지는 것을 경계하는 편이지만 때로는 작품 쓰기가 의식 너머의 어딘가에서 ‘다가’온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기에 엘리만에 얽힌 수수께끼를 지극히 문학적인 눈으로 풀어가는 여정이 흥미롭고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 주인공인 디에간과 그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시가 D, 그리고 엘리만은 언뜻 모두 작가의 일부처럼 보이는데, 게토라고 불리는 소수문단에서 디에간과 그의 동료들이 겪는 고뇌가 낯설지만은 않다. 그들은 돌파구를 찾고 있고, 또한 오랫동안 그 일에서 철저하게 패배해왔다. 소설 안과 밖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지점으로, 다소 낯선 배경의 이야기들이 현실에 단단히 발 딛게 하는 지반이 된다. 같은 면에서, 마지막에 디에간이 엘리만의 유언에 대처하는 태도도 지극히 온당하다.
읽고 나면 책과 읽기와 쓰기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책들이 있다.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도 그러했는데, 『소설』이 집요하고 힘차게 그 과정을 파나가는 책이라면, 이 책은 수많은 꿈의 미로 속을 거닐며 단서를 찾아가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창작을 하는 이들은 반드시 읽기를 권하고 싶고, 그렇지 않더라도 충분히 흥미로운 여정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