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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food0980님의 서재
  • 소망의 복음, 요한계시록
  • 조영민
  • 10,800원 (10%600)
  • 2018-10-05
  • : 598

개개인에게 수많은 상황이 있고, 그에 따라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계시록이 쓰인 당시 대부분의 소아시아 교회들은 로마의 강한 핍박속에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교회들은 자신들의 생계와 안전을 위한 기도를 가장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계시록은 그러한 생존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너희가 이 땅에서 성도답게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오심과 성령 충만이고,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기도 역시 바로 이것이라고 말입니다.
교회 학교 아이들이 자라서 청년이 되면 왜 교회에서 보이지 않는지를 생각하며 울어야 합니다. 도대체 생명의 흔적을 찾기 힘든 한국 교회의 예배를 생각하며 울어야 합니다. 또한 이 문제를 해결할 근원으로 복음을 주셨지만, 그 복음대로 살지 못하는 교회와 성도, 즉 우리 자신을 위해 울어야 합니다. 언제까지입니까? 주님의 응답이 있을 때까지입니다. 기근 때에 하늘의 비를 구하며 눈물을 쏟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은 감춰 두신 당신의 방법으로 우리의 통곡에 반응하십니다.
인구조사 장면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교회의 첫 번째 특징은, 교회는 ‘전투하는 공동체‘라는 점입니다. 이스라엘이 백성을 계수하는 경우는 단 한 가지입니다.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각 지파에서 일정의 자원병을 받는 것은 구약성경 곳곳에서 전쟁을 준비할 때 나오는 의식입니다. 성경은 지금 정확히 우리에게 교회의 성격이 전투하는 공동체‘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이단 종파는 144,000명이라는 숫자 자체에 의미를 둡니다. 자기 단체의 인원이 144,000명이 되면 주님이 오실 것이라고 주장하며 열심히 포교를 하는 단체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 숫자는 사람의 수를 의미하는게 아닙니다. ‘12‘는 교회의 숫자입니다. 구약 교회를 상징하는 열두지파와 신약 교회를 상징하는 열두 제자에 많음을 상징하는 1,000을 곱한 숫자가 144,000입니다. 다시 말해, 144,000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 친 이 땅의 모든 교회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이 땅의 교회는 전투하는 공동체‘입니다. 또한 이 땅의 모는 교인은 ‘전투하는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과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과 싸워야 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전신갑주고, 서로를 기도의 끈으로 묶어 사탄의 세력과 싸워야 하는 존바로 교회요 성도입니다. 교회는 놀이터가 아닙니다.
저는 오늘날 곳곳에서 하는 수많은 성령 집회에서 일어나는 특이한 현상이 모두 성령의 역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혹자는 "성령이 아니시면 왜 그곳에서 성도에게 좋은 일을 행하시느냐?"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귀신 들린 무당도 미래의 일을 맞추며, 일부 병을 낫게 하며, 신비한 현상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런 현상을 가지고 귀신도 사람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제가 이같은 현상에 집중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러한 체험이 이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익힌 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없게 하기 때문입니다. 체험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체험주의는 기록된 계시의 말씀을 무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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