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들은 곧 여행을 잊기 시작할 것이다. 그들은 사무실로 돌아갈 것이고, 거기에서 하나의 대륙을 몇 줄의 문장으로 압축할 것이다. 배우자나 자식과 다시 말다툼을시작할 것이다. 영국의 풍경을 보며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다. 매미를 잊고,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보낸마지막 날 함께 품었던 희망을 잊을 것이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다시 두브로브니크와 프라하에 흥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해변과 중세의 거리가 주는 힘을다시 순수한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내년에는 어딘가에 별장을 빌려야겠다는 생각을 또 해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잊는다. 우리가 읽은 책, 일본의 절,
룩소르의 무덤, 비행기를 타려고 섰던 줄,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 등 모두 다. 그래서 우리는 점차 행복을 이곳이 아닌 다른 곳과 동일시하는 일로 돌아간다. 항구를 굽어보는방 두 개짜리 숙소, 시칠리아의 순교자 성 아가타의 유해를 자랑하는 언덕 꼭대기의 교회, 무료 저녁 뷔페가 제공되는 아자나무들 속의 방갈로, 우리는 짐을 싸고, 희망을 품고, 비명을 지르고 싶은 욕구를 회복한다. 곧 다시 돌아가 공항의 중요한 교훈들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만 하는것이다.
비행기가 눈앞에 있지만 다가갈 수 없다는 사실, 앞으로 48시간 동안 도쿄에 갈 수 있는 비행기 좌석이 없다는사실, 하루 종일 잡혀 있던 도쿄의 여러 가지 약속이 다 취소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이 남자는 두 주먹으로 카운터를내리치며 소리를 내질렀다. 그 소리는 멀리 터미널 서쪽의WH 스미스 아웃렛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나는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가 네로 황제를 위하여 쓴『분노에 관하여(On Anger)」라는 논문, 그중에서도 특히분노의 뿌리는 희망이라는 명제가 떠올랐다.
나의 고용주는 제대로 된 책상을 하나 놓아주겠다는약속을 지켰다. 사실 이곳은 일을 하기에 이상적인 장소였다. 이런 곳에서 글을 쓰는 것이 가능하겠냐는 생각이 들겠지만, 오히려 그런 어려운 작업 환경이 글을 쓰는 것을가능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일하기 좋은 곳이 실제로도 좋은 곳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조용하고 시설이 잘 갖추어진 서재는 그 흠 하나 없다는 점 때문에 오히려 실패에 대한 공포를 압도적인 수준으로 높이곤 한다.
그러나 수하물 찾는 곳은 공항의 감정적 클라이맥스의서막일 뿐이다. 아무리 외롭고 고립된 사람이라도, 아무리인류에게 비관적인 사람이라도, 월급을 줄 걱정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도, 도착했을 때 누군가 의미 있는 사람이 맞으러 나와주기를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일을 하느라 바빠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다고 해도, 우리가 애초에 여행을떠난 것에 불만이 있어 보기도 싫다는 말을 했다고 해도,
지난 6월에 우리 곁을 떠났거나 12년 반 전에 죽었다고 해도, 그래도 그들이 나와주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그냥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고 우리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느끼게 해주려고(우리가 작은 아이였을 때 누군가 가끔이라도 그렇게 해주었을 것이며, 그런 일이 없었다면 우리는절대 여기까지 올 힘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나와주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몸을 떨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