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을 향해 밀은 "전체 인류 가운데 단 한 사람이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옳지못하다. 이것은 어떤 한 사람이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나머지 사람 전부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것만큼이나 용납될 수없는 일"이라고 역설한다. 비판과 회의를 두려워하면 어떤진리라도 ‘헛된 독단적 구호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 이것이《자유론》의 출발점이자 결론이다.
(다행히 옛날처럼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의 근거를 조금도 알지못하고, 극히 피상적으로 제기되는 비판에도 전혀 대응하지못한다. 그럼에도 그것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높은권력자가 어떤 생각을 한번 심어주고 나면, 그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아무런 득이 되지 않고 해가 될 뿐이라고 여길 개연성이 높다. 이들은 자신의 영향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리 현명하고 사려 깊다 해도 기존 주장에 대해 반박하는 것을 좀처럼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
신교도 Protestant도 부인하지 못하듯이, 자신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자기 의견을 갖는 것만큼지성과 판단력 개발에 도움이 되고 따라서 인류의 지성과 판단력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 또 있을까? 지성을 단련하는 데 가장 중요한 변수를 꼽으라면 단연 자기가 옳다고생각하는 것의 근거를 학습하는 것이다.
관점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충분히 연구하지 않고 그들이 왜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는지 심각하게 검토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말에 대해서도 잘 모를 수 있다. 자신의 주장 가운데 일부가 사실은 상대방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것일 수도 있음을 모른다. 그래서 서로 모순 관계에 있는것처럼 보이는 어떤 측면이 알고 보면 같은 내용을 담고 있고, 따라서 팽팽하게 대립하는 두 주장 가운데 왜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 되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생긴다.
저울의 추를 움직이듯 어떤 문제를 놓고 망설이는 사람의 생각을 확정해주는 진리, 정통한 지식을 갖춘 사람이 특정 판단을 내릴 때 따르게 되는 그런 진리에 대해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진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대립하는 두 주 똑같이 귀를 기울이고, 각각의 가장 강력한 논거를 편견 없이 정확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실제로 그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독창성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불행하게도 이를 당연하게생각한다. 사실 독창적이지 못한 사람들로서는 독창성이 왜중요한지 이해하기 어렵다. 독창성이 자기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들이 그것을 안다면 독창성이 문제 되지도 않을 것이다. 독창성이 그들을 위해 하는 일 가운데 첫 번째로 중요한것은 그들의 눈을 뜨게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그도 독창성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누군가가 처음 시작하지않았으면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은 모두 독창성이 뛰어난 사람들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