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다 한들, 이제 우리는 여기(예로, 캐나다의) 우리와 거기(예로, 보스니아의) 우리로 분열한다. 여기 우리가여전히 현재의 우리를 보스니아에 머물러 있는 과거의 우리와 동일시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거기 우리의 시점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먼저 어머니는 길모퉁이에서 우연히 발견한 귀금속 상점에 들어가 한참을 에누리한 끝에 자신이 가장 아끼는 금목걸이를 팔았다.
그러고 나서 돈을 나눠주셨는데, 당연히 아버지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동생과 나는 곧바로 일전에 둘러본 음반 가게로 가서 서로의돈을 모아 데이비드 보위의 〈로우Low) 앨범이 담긴 카세트테이프를샀다. 새로 산 보물과 함께 돌아온 우리에게 어머니는 가족끼리의저녁 산책에 동참하라고 했다. 마치 휴가를 즐기는 것처럼 온 가족이오스티아의 해안가를 따라 한가로이 거닐던 그날 저녁의 기억을 나는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부모님은 사랑에 빠진 것처럼 손을 잡고, 아이들은 집안의 금붙이와 맞바꾼 젤라토를 핥아먹던 그 순간의 냄새와 소리와 영상이 고스란히 담긴 그날 저녁의 기억을, 하늘이 무너진 와중에도 헤몬 가족은 잠깐이나마 행복을 찾아 누리고 있었다.
나는 콜제비치 교수에 점점 집착하게 되었다. 그의 살상 기질을눈치챌 수도 있었을 최초의 순간이 언제인지 밝혀내기 위해 무진장애를 썼다. 죄책감에 몸부림치며 - 나의 서가가 타버린 자리에 남은 잿더미를 파헤치듯 그의 수업과 그와의 대화를 곱씹었다. 에밀리 디킨슨부터 다닐로 키슈까지, 프로스트부터 톨스토이까지, 즐겨읽었던 책들과 시집들을 안 읽은 상태로, 교수가 가르쳐준 독서법 또한 안 배운 상태로 되돌렸다. 나는 눈치챘어야 했고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다. 꼼꼼히 읽기에 경도되어 어리석었던 나는 가장 존경하는 은사가 엄청난 범죄 모의에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지못했다. 그러나 한번 일어난 일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다.
내가 누구라는 감각, 자아의 가장 심오한 정체성은 인간관계망에서의 내 위치에 따라 결정되었고, 그 인간관계망의 물리적 필연의결과가 도시라는 구조물이었다. 반면, 시카고는 사람들을 한데 모으기 위함이 아니라 서로 안전거리를 두고 떨어져 살기 위해 만든 도시였다. 규모와 힘과 사생활 보호라는 욕구를 주요 치수로 하여 건축한 도시처럼 보였다. 거대하기 그지없는 도시는 자유와 고립의,
자립과 이기의, 프라이버시와 고독의 구분을 외면했다. 시카고 안에는 내 자아가 위치할 인간관계망이 없었다. 내 안에 존재하던 나의도시 사라예보는 포위와 파멸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나는 물리적실향과 형이상적 실향을 동시에 겪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 데도 살지 않을 순 없었다. 나는 그저 시카고에서도 갖게 되길 바랐다. 사라예보에서 가졌던 내 영혼의 지형도를.
나는 희망을 빌어주는 사람들과 말하는 게 힘들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더더욱 힘이 들었다. 친절하게도 사람들은 도움이 되려 했고, 아내와 나는 그들의 이러니저러니 하는 소리를 싫은내색 없이 견뎠다. 그들은 그저 그런 얘기 말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우리의 고난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 안에 들어가, 공허하고 거추장스러운 말들로 담을 쌓았다. 아내와 나로서는 말로 도울 방도를 찾지 않는 현명한 이들을 대할 때가 훨씬 더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