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새해를 책과 함께 시작하는건 아주 좋은 아이디어 였던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리뷰 제안을 받고 책을 받을때까지만 해도 솔직하게는 그저 그런 편집서이려니 했다. 저자가 투자계에서 이름난 구루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벨 경제학상 수상' 같은 거창한 타이틀이 있는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는 투자서를 많이 읽다보니 오히려 책을 읽는 범위를 줄여야 겠다는 생각이 들던 차였다. 유사한 내용의 반복을 각기 다른 저자의 목소리로 듣느니 차라리 피터린치 같은 투자계의 현인들 책을 반복해서 읽는게 낫겠단 생각. 그런데 이 책, '돈의 심리학'을 읽고선 괜한 자만심을 버리자고 생각했다. 여러 책을 읽는것도 나쁜 선택은 아닌것 같다는 결론.
요 근래 읽어본 책중에 가장 좋았고, 신선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운 내용만 있는건 아니다. 하지만 글을 쓰는 방식이 정말 달랐다. 본인의 이야기와 구루들의 잠언들을 배치하는 방식까지는 다를게 없는게, 그 구성이 특이하고 유려했다. (이부분에선 역자의 노력도 간과할 수 없겠다. 이건 선생님과 비견될만큼 군더더기 하나없이 잘 읽히는 훌륭한 번역이었다.)
저자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여러 투자 철학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특히 그렇게 알려진 투자철학은 서로 상반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종목과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부분.
나는 여러분에게 투자 대상을 사랑하라고 말하고 싶다. 이는 전통적인 조언은 아니다. 투자자들은 자신의 투자 대상에 대해 아무 감정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을 명예훈장처럼 생각한다. 그게 이성적으로 보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내 전략이나 내가 보유한 주식에 대해 아무 감정이 없어서 형편이 안 좋을 때 해당 전략이나 주식을 쉽게 포기해버린다면, 겉으로는 이성적으로 보이는 성향이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한다.
'좋아하는 것을 하라'는 말을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조언으로 보면 그저 포춘 쿠키에 적힌 글씨처럼 공허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인내심을 주는 말로 본다면 어떨까. 인내심은 성공 확률을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옮겨오기 위한 필수 요소다. 이 점을 생각한다면 모든 금융 전략에서 '좋아하는 투자를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함을 깨닥게 된다.
어떤 이유로든 어느 기업을 열렬히 좋아해서 투자했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이 돈을 잃고 있거나 기업이 어려움에 처하는 것과 같은, 틀림없이 오게 될 나쁜 시절이 왔을때에도 덜 예민할 수 있다. 적어도 내가 뭔가 의미 있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읽을때는 뭔가 후련함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투자를 하면서 손절매를 정말 못하기도 하지만, 알려진 여러 밸류에이션 공식을 이용해서 싸다고 판단되어진 종목들이 하락할때는 공식처럼 견디는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얘들은 죄다 아이폰만 쓴다, 학교에서도 여자얘들은 죄다 아이폰' 이라는 내러티브에 주저하면서 샀던 애플은, 지난 코로나 하락장에서도 '팔아야 할까?' 하는 고민이 조금도 생기질 않았다. 매일 매일 들여다보는 Youtube때문에 샀던 알파벳도, 코로나로 세상이 어려워져도 반도체는 여전히 필요할거란 생각으로 들고 있던 삼성전자도. 이 회사들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아마 다른 종목들처럼 이리 저리 매도를 저울질했겠지. 그런 면에서 저자가 이야기 한 것 처럼 '인내심'을 가질려면 어느정도는 종목과 사랑에 빠져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게 된다.
비슷한 이야기지만, 책이나 구루들의 방법론을 그대로 따르지 말라고도 조언한다. 대표적으로 '현명한 투자자'도 벤저민 그레이엄 생전에 4번이나 개정판이 나왔고, 그때마다 그의 공식은 변경되었단다. 책에 인용된 벤저민 그레이엄 생전의 인터뷰로 확인.
죽기 직전에 그레이엄은 개별 주식에 대한 상세한 분석 전략을 여전히 선호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전반적으로 보면 아닙니다. 더 이상 우월한 가치 기회를 찾기 위해 힘든 증권 분석 기법들을 사용하자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우리 책이 처음 출판되었던 40년 전이었다면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로 상황이 많이 변했으니까요."
알려진 유명 투자자들 중에도 여전히 그레이엄식의 NCAV 주식에만 투자할것을 권하는 사람이 꽤 있다. 그런데 정작 벤저민 그레이엄은 생전에 '시대 상황이 많이 바뀌었으니 자신의 공식을 그대로 적용하는것은 무리가 있다'는 인터뷰를 했다는걸 알게되면 그들은 어떤 기분이 들까?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더불어 완전히 좋기만 한것도 없다. 중요한 투자 철학은 배워야 겠지만 방법론이나 공식을 따라하는것으로 편안함에 안주하면 안된다.
이 부분은 나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것 같다. 좋아보이는 종목인데 공식에 대입해보면 너무 비싸서 매수를 망설이던... 그리고 그 종목은 얼마후 날라가고. 어찌 보면 결국 결과론이겠다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이 일찍 출간되어 내가 읽었다면 아마 조금 더 편하게 '유연함'을 가지고 접근하지 않았을까?
좋은 내용이 너무 많지만, 마지막으로 저자의 '버블'에 대한 시각도 인용해볼만 하다. 저자는 주식시장의 버블은 점점 단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들에게로 주식이 옮겨가는 현상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적인 시각으로 주식을 분석하는 사람들의 눈으로는 절대 살수 없는 가격에 주식들이 놓이게 되고, 그렇게 올라가는 주식을 '이해할수 없다'고만 하게 된다는. 단기 투자자나 트레이더 들에게는 오늘 매수해서 짧은 시간내에 이익을 보고 매도를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렇기에 중요한것은 며칠후 혹은 심지어 오늘안에라도 이 주식을 샀다가 팔아서 이익을 볼수 있느냐 만을 살피게 된다. 이제 현재의 주식 가격은 더이상 중요치 않게 된다. 정말 중요한것은 방향성. 현재 오르고 있느냐 혹은 내리고 있느냐. 그것은 그것대로 그들에게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한다. 장기투자를 해야 좋은 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이해되어 지지 않을 행동. 하지만 그게 바로 주식시장이라고.
이들 투자자에 대해 할 말은 많다. 투기꾼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무책임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어마어마한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를 비이성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거품이 형성되는 것은 사람들이 비이성적으로 장기투자에 참여해서가 아니다. 스스로 자라고 있는 모멘텀을 붙잡기 위해 사람들이 단기거래 쪽으로 움직이는, 어느 정도 이성적인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이윤을 좇는다. 단기거래자들이 활동하는 영역에서 장기투자를 지배하는 규칙들(특히 밸류에이션 관련)은 무시된다. 지금 하고 있는 게임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태는 흥미로워지고 문제도 발생한다.
서로 다른 게임의 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면 된다고 한다. 지금 장세가 그들(모멘텀/단기투자자들)의 장세여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면, 그저 조용히 물러나 있으면 된다. 혹은 본인이 파도타기에 능숙한 투자자라면 그런 거침없는 파도에 몸을 맡겨 보는것도 나쁘지 않을터. 중요한것은 스스로가 어떤 게임에 익숙한 사람인지를 파악하면 된다고.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다른 게임을 하고 있는 사실이다. 내가 이 사실을 이해하는 데는 꽤나 오랜 세월이 걸렸다. 여기서 알아야 할 건 다음과 같다. 돈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점은 내가 시간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나와 다른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행동에 설득당하지 않는 것이다. 당신이 지금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데 비상한 노력을 기울여라. 그렇게 하는 사람이 얼마나 적은지 알면 놀랄 정도다.
이부분은 책의 Story 16 부분이다. 이 책을 서점에서 만난다면 우선 16장 부터 읽어보길 추천. 개인적으론 우리나라의 주식시장도 버블의 초입인것 같은데, 그렇기에 이 부분을 읽어보면 큰 도움이 될것 같다.
제목은 너무 흔한데, 내용은 너무 좋은 책이다. 좀더 유니크하고 임팩트 있는 제목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걱정도. 당장 검색해보니 같은 제목의 책이 이 책 말고도 두권이나 있던데. 2021년의 독서생활을 이 책 덕분에 흥미진진하게 시작한것 같아 기분이 좋다.
개인적으로는 인터넷 서점에서 저자인 '모건 하우절'을 신간알리미 등록을 해두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긴 했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정말 좋은 책입니다. 새해를 맞아 이 책으로 투자 생활을 시작하면 어떨까 합니다. 추천 쾅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