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람의 삶이 교차하는 길 위에서
박수현 2026/01/2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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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재즈 음반 《Kind of Blue》.나는 음악 스트리밍 어플에 ‘마일스 데이비스’를 검색했을 때 이 음반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때는 재즈 뮤지션들을 잘 모르던 때라 누가 참여했는지 봐도 몰랐는데, 지금 보니 라인업이 굉장히 화려하다.
당연히 데이비스, 콜트레인, 빌 에번스 모두 전성기 시절에, 커리어의 정점을 찍을 때 만나 함께 만든 음반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게 신기했다. 마일스는 재기하는 단계에 있었고, 콜트레인은 수렁에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으며, 빌 에번스는 재즈 분야에서 성공하고자 분투하고 있었다.
이들이 한데 모이기 전의 콜트레인과 빌 에번스에게는 ‘자신감은 낮고 스스로에게 엄격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그들의 삶을 고통의 시간으로 이끌었지만, 뒤이어 필연적인 성장으로 이어지게 했다.
마일스와 함께하기 시작하면서 그에 대한 존경심으로 스스로에게 주어진 자리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빌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오랜 시간이 흐른 만큼 지금은 완성형 거장의 모습만 기억하기 마련인데, 책을 읽으며 시작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처음부터 긴장도 안 하고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할 것 같은데, 각자 서툰 점도 있고 스스로의 실력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했던 걸 보면 역시 그들도 같은 인간이구나 하는 동질감이 느껴졌다.
이렇게 전기적 성격을 띠는 책은 어린 시절 읽은 위인전 이후로는 처음이다. 다양한 인용, 세세한 서술 등이 그 시절의 분위기와 상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녹음 세션 현장이 저절로 상상되기도 했다. 은근한 기싸움, 아웅다웅 의견 조율..!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인 만큼 기억(회고)도 여러 시점(버전)으로 남아 재밌었다. 또 협업하는 과정에서 서로 밀어붙이면서도 끌어당겨주며 함께 성장해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여러 사람의 삶이 교차하는 길 위에서 《Kind of Blue》가 만들어졌다는 걸, 이밖의 수많은 음악들이 만들어졌다는 걸 정성껏 보여주는 이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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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에 손을 대는 심리나 끊어내지 못하고 중독되는 것에 대한 내용은 너무나 현실적이라 읽기만 해도 심리적으로 힘들었다. 정기적으로 일(공연,리허설)하고 그러면 마약에 빠질 일이 없는데, 일이 드문드문해지면 따분해지고 게을러지고 우울해져 약에 또 손을 대게 된다는 덱스터 고든의 말이 안타까웠다. 동시에 소위 ‘약쟁이’가 된 뮤지션들이 주변 사람처럼 느껴져서 나도 함께 지쳐가는 듯했다. 마일스가 금단 증상에 시달리며 ‘회전초처럼’ 도시를 굴러다녔다는 표현은 적절한 비유였지만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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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축이 되는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빌 에번스뿐만 아니라, 그들의 음악 인생에 발자국을 남긴 다른 뮤지션들에 대해서 알아갈 수 있다는 점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텔로니어스 멍크, … 특히 멍크는 누구보다 가정적이며 온화하지만 힘이 세서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게 내 상상과 비슷했고, 엉뚱한 구석도 있어서 웃음이 났다.(녹음 중에 “화장실이 어디지?”, “나는 어디서 들어가야 돼?”라고 말했다거나, 공연하러 안 들어오고 길에서 춤추다가 이게 더 돈이 많이 된다고 한 것..🤣) 그리고 젊은 뮤지션들에게 기꺼이 집을 내어준 길 에번스는 참 너그럽고 좋은 사람이었다.
(+ 재즈 외 분야의 저명한 인사들 역시 잠시지만 등장하기도 했다. 장 폴 사르트르, 레너드 번스타인, 프랭크 오하라 등등… 동시대를 살아갔다는 걸 체감하지 못했기에 좀 놀랐다.)
*출판사의 서평단 활동으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자유롭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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