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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사탕님의 서재
  • 아몬드 (양장)
  • 손원평
  • 12,600원 (10%700)
  • 2017-03-31
  • : 32,398

소년의 머리 속 편도체는 보통 사람들의 그것보다 작았다. 겉으로 봐서는 티가 나지 않았지만, 소년의 '아몬드'는 제 역할을 할 줄 몰랐다. 그래서 소년은 감정에 무감각했다. 소년은 지극히 평범해 보였지만, 자신의 '아몬드' 때문에 별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소년의 엄마는 이런 소년에게 끊임없이 교육을 시켰다. '희노애락애오욕' 각 글자를 종이에 적어 집안 곳곳에 걸어두기도 하였고, 남들의 말과 표정에 대해 대답하는 훈련도 시켰다. 한 떄는 늘 손가락질받는 아이였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평범하게 살아가는 듯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육의 결과였다. 


손원평의 장편소설 <아몬드>는 4부로 이루어져 있다. 소년의 어린시절부터 비극의 그날까지 1부, 우연처럼 필연처럼 만나게 된 '곤이'와의 이야기가 2부,  '도라'를 통해 조금씩 다른 무언가를 느끼는 이야기가 3부, 그리고 마지막이 4부이다.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는 소년이 겪게되는 인생의 굴곡과 성장 과정을 소년의 시각에서 풀어내고 있다. 감정에 대해 무감한 소년이기에 담담한 어투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때로는 끔찍한 사건들조차 평이하게 묘사되기도 하지만, 감정을 모르는 소년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깊이 몰입하게 되는 소설이다. 길지는 않지만 아몬드처럼 단단한 이 소설에 마음을 빼앗겼다. '감정 표현 불능증'이라는 색다른 소재가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부르는 청소년기가 결합된 설정도 흥미로웠다. 소년은 누가봐도 불행한 상황 가운데서 오히려 담담했다. 분노를 느끼고 좌절하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을 직시했다. 감정을 느낄 수 없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몰랐다.


우리는 자신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말하는 것을 즐기면서도, 때로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 때문에 괴로워한다. 기쁘고 즐거운 일은 계속해서 말하고 싶어하고, 표현하고 싶어한다. 누구도 슬프거나 분노하길 원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감정'이라 부르는 그것들은 억누를수록 괴롭고, 그렇다고 무조건 표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자연스럽기에 더 괴롭기도 하다. <아몬드>의 소년은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웠다. 본인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그랬기 때문에 '괴물' 취급을 받았다. '로봇'이라고 놀림받기도 했다. 하지만 소년의 시각을 통해 '정상인'들이 오히려 당연하다고 여기는 감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가 느끼는 것은 과연 진짜일까? 우리가 말하는 '그 감정'과 실제로 느끼는 '그 감정', 그 또한 사회적 교육의 산물은 아닐까? 우리 역시 감정을 가슴이 아닌 머리로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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