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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사탕님의 서재
  • 라스트 러브
  • 조우리
  • 12,600원 (10%700)
  • 2019-10-30
  • : 418

우리는 왜 '덕질'을 하는가. 어떤 대가를 바라기 보다는 나만의 만족에서 끝나는 경우가 더 많은데도, 우리는 우리를 알지도 못하는 상대방에게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그 상대를 위해 무제한적으로 에너지를 쏟아낸다. '덕질'을 하는 사람에게 물어본다한들 답이 나올 수 없는 질문이건만, 그보다 확실한 건 어쨌거나 많은 이들이 '덕질'을 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취미생활 정도로 치부될 수 없으며, 하나의 취향으로 단정짓기에는 우리나라 연예계는 물론 문화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덕질'이리라. 일부에 불과하겠지만 '덕질'을 하다가 재능을 발견하여 '성덕'이 되는 경우도 있고, '덕질'과 관련된 일을 통해 돈을 버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질'을 하는 사람들조차 스스로에게 큰 의미 부여를 하기보다는 주변 시선을 더 의식하진 않았을까.

<라스트 러브>는 제로캐럿이라는 가상의 걸그룹 이야기와 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팬픽이 교차되어 전개되는 독특한 소설이다. 팬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면서 (한 가지 성만으로 존재하는 아이돌 그룹 특성상) 동성애 코드가 빠지지 않는 팬픽이 메이저 출판사의 소설로 출판되었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놀라웠다. 모든 팬픽이나 인터넷 소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아마추어가 사심을 가득 담아 쓰는 소설은 팬들을 위한 것이지 불특정 다수를 위한 것은 아니기에 활자로 인쇄되어 서점에 꽂힐 것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그 중에는 정말 능력자들이 있어서 팬들 사이에서는 출판을 직접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여성 작가가 쓴 여자 아이돌 팬픽이라니. 그동안 남자 아이돌만 좋아했던 나로서는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소설 제목인 <라스트 러브>는 제로캐럿의 데뷔곡이자 첫 콘서트(이자 마지막이 될) 제목이기도 하다. 콘서트를 준비하고 콘서트가 마무리되는 순간까지의 시간 속에 단순히 팬심 담긴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을지 모르는 '여자 아이돌'에 대한 편견이나 불합리, 알게 모르게 그들에게 쏟아지는 언어적, 비언어적 폭력들이 곳곳에 나타나있다. 팬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아이돌들에게 보기 좋은 캐릭터를 씌우고 그것을 강요하는 모습들도 있다. 현실이 반영되어 자칫 어두워질수도 있는 이야기 사이사이에는 이것이 픽션임을 증명하듯 제로캐럿이 등장하는 팬픽이 등장한다. 제로캐럿이지만 동시에 제로캐럿이 아닌 그들은 학생이 되었다가, 편의점 알바생이 되었다가, 회사원이 되기도 한다. 자신의 재능을 맘껏 발휘하고자 꿈을 꾸었던 소녀들은 현실이 아닌 팬픽에서 오히려 더 자유로워진다.

등장인물 중 하나이자 제로캐럿의 팬픽 저자인 파인캐럿은 제로캐럿의 오랜 팬이다. 파인캐럿은 제로캐럿 초창기부터 팬이었는데 '최애'였던 재키가 없음에도 제로캐럿을 응원하고 팬픽을 계속해서 쓰는 골수팬 중 하나이다. '최애'가 탈퇴한 뒤에도 제로캐럿을 응원하는 파인캐럿은 제로캐럿 팬들 사이에서 꽤나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는 캐릭터이다. 아마도 S.E.S.의 오랜 팬이자 S.E.S. 팬픽을 썼다는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파인캐럿을 통해서 <라스트 러브>는 그들만의 리그로 치부될 수 있는 이야기를 상대적인 제 3자의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도와준다.

그래도 아이돌을 좋아해 본 적이 없는 이들이라면 이 소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요즘 '덕질'을 해 보지 않은 나에게도 낯선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한들 이름도 전체 몇 명인지도 모를 아이돌들이 매해 쏟아져 나오는 케이팝 시장이 있는 한, <라스트 러브>는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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