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핸드폰이 생긴 해는 2000년이었다. 당시 고1이었는데, 우리 반 친구들 절반 정도가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 팩트(!)를 빌미로 첫 핸드폰을 가졌더랬다. 첫 핸드폰의 기능은 그야말로 '연락용'이었다. 전화와 문자, 그게 전부였다. 핸드폰으로 쉽게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게 언제였던가. 아마도 대학교에 들어온 이후였던 것 같다. 지금은 안 쓰는 사람 찾기가 더 힘든 카톡은 또 어떤가. 카톡이 없었을 땐 어떻게 대화했나 싶을 정도다.
요즘 중고생들을 보면 (아니 초등학생들도) 핸드폰이 없는 친구가 없다. 사진 찍고 카톡하는 것이 어릴 때부터 이미 일상이 된 아이들. 그들은 나중에 학창시절을 어떻게 기억할까? 졸업앨범을 들춰보거나 친구들과의 쪽지, 편지, 교환일기를 모아놓은 박스를 열어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클라우드 계정에 접속해서 해당 년도의 사진을 불러내거나, 대화 백업 내용을 열어보지 않을까?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한 사진을 불러내고, 방금 나눈 듯한 따끈따끈한 대화를 되짚다 보면 학창시절에 대한 기억은 더욱더 또렷해질까? 아니면, 오히려 언제든지 열어볼 수 있고 불러낼 수 있기에 그저 인터넷상 어딘가에 저장해 놓을 뿐, 기억에 대한 애틋함을 잊고 살아갈까?
<열세 살의 여름>은 열세 살 해원이가 여름방학에 가족과 부산 바다에 여행을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정확히는 부산에서 일하시는 아빠를 만나기 위해 엄마와 언니, 해원이 함께 아빠를 찾아갔다. 바다에서 놀다가 먼 발치에서 우연히 발견한 같은 반 남자애 산호.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그러하듯 적극적으로 아는 채는 하지 못하고 서로 힐끔거리기만 한다. 해원의 모자 사건으로 둘은 인사를 나누지만, 개학 후 서울에 와서는 그것조차 다시 어색해진다. 우여곡절 끝에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하지만 그것도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열세 살의 여름>은 평범한 초등학교 6학년 소녀의 학교, 가정, 일상을 잔잔한 시선으로 쫓아간다. 굵은 체의 그림은 화려하진 않지만 열세 살이 느끼는 여러가지 감정을 과하지 않게 그려냈다. 친구와의 교환일기, 집으로 걸려오는 전화, 비디오 대여점 등 1999년도를 배경으로 그 당시에만 경험할 수 있었던 일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초등학생 버전' 느낌도 없지 않다. 그 때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주로 유효한 '매직' 같은 소재지만, 21세기의 초등학생들의 감정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조차 어색하고 이상할 뿐아니라 부끄럽고, 자칫하면 놀림거리가 되고 마는 그런 마음들을 어떻게 표현할 줄 몰라 갑갑했던 때의 느낌이 과하지 않게 잘 담겨있다.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이 빠르게 지나가지만 여운은 오래 오래 남는, 열세 살의 마음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시원하지만 따뜻한 <열세 살의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