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처럼 아늑하게 흔들리는 지하철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아, 사람들이 조심스레 꾸며놓은 표정이 슬그머니 벗겨지기 시작한다.- P13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지. 마음의 경계를 풀고 멍한 시선으로, 소외된 인간들에게 허락된 진정한 위안을 찾는 그 몇 분간이.- P13
이곳에서 사진을 둘러보고 있는 젊은 변호사와 신참 은행원과 활기찬 사교계 아가씨들은 틀림없이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정말 절묘한 사진들이야. 이 얼마나 예술적인지. 이런 것이 바로 인간의 얼굴이야!‘ / 하지만 사진이 찍히던 당시에 젊은이였던 우리에게는 사진 속 사람들이 유령처럼 보였다.- P14
워커 에번스가 1938년부터 1941년까지 몰래 찍은 사람들의 사진은 확실히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거기에 담긴 것은 특정한 인간 군상의 모습이었다. 풀 죽은 사람들의 집단.- P15
10년이면 충분했다. 인생 전체의 방향이 좋은 쪽, 또는 나쁜 쪽으로 바뀌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살인을 하거나 창작을 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니,하다못해 누군가의 앞에 의문을 하나 떨어뜨려놓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P17
뉴욕에서는 아름다운 것이라면 무엇이든 환영받는다. 이 도시는 아름다운 것들을 가늠해본 뒤, 당장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하다못해 치수가 맞는지 한번 입어보기라도 한다.- P27
"나는 무슨 일이든 겪을 각오가 돼 있어. 남의 명령에 휘둘리는 일만 아니라면."- P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