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1985, 벨라루스)
`세컨드 핸드 타임`과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두 권 중 조금이라도 얇은 책을 먼저 선택하려 했다. 슬쩍 보니 둘 다 두께가 만만치 않아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또 겪은 러시아 여자들의 전쟁 이야기이다. `목소리 소설`이라는 독특한 분류에서 보듯이 끊임없이 그녀들의 언어로 듣고 그것을 기록해 나간다. 그들 스스로 또한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들의 가장 아름다웠지만 참혹했으며 슬픈 시절.
작가처럼 전쟁을 모르는 전후 세대이기에 전쟁에 대한 이미지는 국가, 죽음, 군인, 폐허 그리고 최근에는 내전쯤이다. 내가 그린 이미지에 여자는 없다. 여자가 주인공이라 말하니 묘하게 쓰리지만 책에서는 전쟁과 여자가 핵심이다.
사실이기에 힘이 있고 울림이 있다. 전쟁에 참전한 여성들은 전쟁영웅이라는 허울좋은 말로 포장되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실제 검열과 출판으로 작가는 어려움을 겪었다. 40년의 시간이 흘렀음에, 그럼에도 잊지 못하고 토해내는 그들의 목소리를 막으려는 무자비함이 또 다른 전쟁이 왜 아니겠는가.
그들이 말했다. 전쟁이 끝나고 다른 전쟁이 시작되었노라고.
전쟁의 참담함은 끝없었다. 나라의 위험 앞에 전방으로 보내달라 외치고 그곳에서 싸워온 수많은 여자 아니 소녀들. 죽음 그리고 죽음뿐이 기억할 게 없는 상황들.
단편적이지만 인상깊게 남은 것은 독일 땅에서 충격받은 그녀들이다.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커다란 집과 새하얀 식탁보와 섬세한 커피잔 세트라니.
쏘아죽여야 한다는 단 하나의 신념이 부상당한 독일군, 포로로 잡힌 독일 아이 앞에서 얼마나 부질없었는지.
전장에서도 일상과 평범을 찾고 아름답고 싶었던 그녀들이 평화를 찾은 이후 창녀로 불리고 독한 여자가 되어버린 현실이 암담하다. 다시 시작된 그녀들의 전쟁이 끝나는 그 날을 마냥 기다릴 수 없었던 목소리에 다시 귀기울여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