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회주의 문헌 자료의 부재성
북한을 사회주의 공화국이라 비판할 때 간과하기 쉬운 지점은, 이들 국가 내부에 작동하는 강력한 인민 통제 기반을 지적하는 것보다 사회·과학적 분석 자료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 스탈린주의 자료를 포함한 전집 발간의 의의가 수령제의 한계 속에서 평가되고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여기서 그러한 한계를 지적하는 것은 경솔한 일일 수 있다. 북한이 사회주의 공화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숱한 당내 투쟁을 거쳐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의 과학성에 대한 사회주의적 고찰을 담은 서적을 북한 도서관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반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남한 구조에서는 이러한 자료가 상업적으로 판매되는 출판물의 형태로만 허용된다. 물론 북한 내 자료 열람 방식 역시 언제나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정부 관할하에 통제되어 왔으므로, 이러한 개방성이 온라인으로 확장되었을지라도 그 한계는 명확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전에 남북한의 한국 마르크스주의 전통성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성으로 발전하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사회·과학적 분석은 기존의 인문주의적 혹은 관념적 철학 사고에 그치지 않고 유물론적 분석에 기반한 사회·정치 분석에서 출발했으며, 이는 곧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지지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논의가 제대로 허용될 수 없음이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직접 서점을 방문하더라도 출판물의 비중이 온통 자본 경제학 관련 내용으로 도배되어 있는 현실은 매우 모순적이다.
반면 북한학 전공자들에게는 남한 서적 및 자료의 한계가 자본성과 미진한 상업성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명백히 보일 것이다. 남한 학계의 분석이 비체계적이고 비과학적이며 인민의 성격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은 《로동신문》만 조금 살펴보아도 알 수 있다. 이전에도 북한 인민들은 비록 수령제하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대목에 미세한 차이를 보였으나, 그보다는 인민들이 주체적으로 남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분석을 수행해 왔다. 이러한 점에서 남한의 자본주의 교육은 갈수록 계급적 의식 수준이 미달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레닌 역시 《소비에트 교육부 서한》에서 “문맹을 탈피하는 계몽적 의식 수준보다 중요한 것은 계급적 의식을 갖춘 인민들의 무장”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 지적이 타당하다면 남한의 교육 수준은 양적으로는 방대할지 몰라도 질적으로는 미달한 상태다. 북한 내부의 ‘인민대학당’만 보더라도 약 2,600만 부에 달하는 사회·과학 및 마르크스주의 관련 자료가 보관되어 있다. 이에 비하면 실패한 자본주의 분석을 여실히 보여주는 남한 사회의 역사적 발전성은 오히려 낙후된 상황에 놓여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물론, 경제적 수준 자체는 천차만별이지만 말이다.
학습 공간인 도서관이 점차 아동의 수준에 머무르는 민주주의적 교육관에 기대는 한, 마르크스주의 및 사회·과학 분석과 자본주의 경제학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남한에서 재출간되는 사회·과학의 비중이 경영학에 편중되는 현상은 막대한 자본을 불필요한 곳에 투여한 결과다. 이는 최근 재출간된 『공산당 선언』의 미약한 번역 수준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지점에서 남한 자본주의가 양적으로는 비대할지 몰라도 질적으로는 낙후되었다는 지적에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이는 계급적 고찰의 시각이 부재한 남한 학계 전반의 오류와 무관하지 않다. 물론 체제 내부의 대중이 이러한 한계를 스스로 파악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는 전적으로 한국 정부, 즉 남한 사회 체제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