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와 청년 투쟁의 중요성
역대 사회주의 투쟁의 역사에서 청년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모든 역사적 국면에서 청년은 자본주의가 생산한 가혹한 희생물이 아니라 생생하게 움직이는 혁명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문화가 오염시킨 청년 담론과 달리, 청년 주체를 역사적 무대로 소환하는 것은 이들에게 자본주의 질서에 대한 정당한 반론을 제기할 특수한 임무와 기회를 부여하는 일이다.
물론 기성 세대가 구축한 질서와 현 청년 세대가 지향하는 방향 사이에 깊은 격차가 존재한다는 지적이 존재한다. 한국 사회에서 소비되는 세대론은 자본주의가 고도화된 제국주의 국가의 특성상 기성 질서에 포섭된 청년들의 모습만을 보여준다는 한계를 지닌다. 그러나 혁명이 도래하는 시기에는 청년의 역사적 지향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청년은 전방위적으로 누적된 체제 모순의 한계를 딛고, 자본주의 정치가 야기한 기득권 구조를 포함해 사회 전반에 대한 생생한 변혁의 요구를 담아내게 된다. 청년이 직면한 그늘은 단순히 체제 내적인 만족에 국한되지 않으며, 불안정한 삶의 실상에서 촉발된 체제 불만은 자본주의 내부에서도 충분히 폭발적 힘으로 표출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 교육관이 부재한 현실 속에서도,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에 대한 객관적 고찰과 청년 주체가 던지는 날카로운 반론들은 기성 시대가 안주해 온 기존 질서의 오류를 명백히 증명하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 등 언론이 청년층의 ‘극우화’를 부추기는 기사를 생산할 때조차, 그러한 언론 기저에 깔린 시각은 한국 부르주아지가 초래한 결과물이자 민족성에 기대어 봉건적 질서를 유지하려는 전근대적 태도에 불과하다. 이러한 구태의연한 정치적 시각은 이미 역사적 수명을 다했다. 이탈리아의 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옥중수고》에서 “청년이 부재한 정치는 정치적 무관심을 초래하며 그 결과는 자명하다”고 지적했듯, 청년들의 반론을 단순한 세대 갈등이나 ‘극우화 현상’이라는 틀에 가두어 단정해서는 안 된다.
청년들이 투쟁할 가치는 앞으로도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청년 세대가 찬란한 세계를 건설하고, 사회주의 공화국 실현 이후 주체적인 노동 해방과 혁명 투쟁에 대한 헌신을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적 역할이 요구된다. 청년들의 자립성에 대한 요구는 자본이 행사하는 소비의 위력을 압도할 수 있다.
줄어드는 인구 구조를 들어 회의론을 제기하는 시각과 달리, 소수화된 청년 노동자들의 단결과 밑바닥에서의 조직적 노력은 마르크스주의적 실천과 충분히 부합할 수 있다. 청년들을 마르크스주의 이론으로 재교육하고 이들의 사회주의적 투쟁을 적극 지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이는 다가오는 전 세계의 부르주아지 단죄와도 무관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