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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산당



『지금, 일본 공산당』에 나타난 시이 가즈오 연설문의 사상적 특징

 


· 의회주의적 사회 변혁론과 민주주의 혁명 지향

 

시이 가즈오는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로의 이행을 단번에 이루어지는 혁명적 변혁이 아니라, 다수의 합의에 기반하여 계단을 오르는 단계적 과정으로 규정한다. 현시점 일본 사회에 필요한 변혁은 즉각적인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대미 종속과 대기업 중심주의를 타파하는 ‘민주주의 혁명 (자본주의 틀 내의 민주적 개혁’임을 명확히 한다. 또한 과거 소련 방식의 억압적 체제를 배격하고 의회 선거와 다수파 획득에 따른 평화적·민주적 변혁을 지향한다.

 

· 자주 독립 노선과 패권주의 및 교조주의 비판

 

당의 운동 노선을 결정함에 있어 외부 강대국의 지시나 간섭을 배제하는 자주 독립 태도를 견지한다. 과거 소련 및 중국의 간섭을 배격하고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및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폭거’로 비판했으며, 소련 공산당 붕괴 당시에도 패권주의의 해악이 사라진 것으로 보아 이를 환영하는 입장을 취했다. 이는 기존 국제 공산주의 운동 내 교조주의 및 패권주의와 선을 긋는 대목이다.

 

· 반제국주의·반전 평화주의 및 역사 의식

 

태평양 전쟁 이전 전전 (前戰) 시기부터 천황제 전제 정치 아래서 일관되게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반대해 온 역사를 강조한다. 헌법 9조 개악 저지와 평화 수호를 핵심 과제로 제시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범죄에 대해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 근본적 청산이 이루어져야 진정한 동아시아 평화와 한일 우호가 성립한다는 확고한 반제국주의 및 반전 평화주의 입장을 보인다.

 

· 대중적 기반에 입각한 풀뿌리 민주주의

 

정당의 정통성과 동력의 원천을 의회 내 의석수뿐만 아니라 당원, 지역·직장 지부, 기관지 (신문 아카하타) 독자층, 기업 및 국가 보조금을 받지 않는 재정적 독립성 등 민중 삶 속의 ‘풀뿌리 조직력’에서 찾는다.

 

· 역사적 연속성과 과학적 성찰에 따른 당위성 확보

 

창당 이후 당명을 단 한 번도 바꾸지 않은 정당성을 침략 전쟁 반대라는 일관된 투쟁 역사에서 찾는다. 동시에 당의 무오류성을 주장하는 완고함을 배격하고, 과거의 오류나 역사적 제약을 공식 문서 『일본 공산당 80년』에서 인정하고 반성하는 과학적·성찰적 태도를 취한다.


· 한일 관계 및 식민지 지배 책임에 대한 구조적·역사적 시각

 

시이 가즈오는 1965년 한·일 기본 조약의 부실성을 지적하며 1910년 ‘한·일 병합’이 무력을 동원한 위협과 부력 행시로 이루어진 불법·부당한 것이었음을 확실히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한반도 분단과 한국 내 군사 독재 정권의 장기화 문제까지도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연관하여 파악한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근대 사회로 진입한 한반도 주민들로부터 민주주의적 정치 경험과 훈련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분단의 소지와 독재의 역사적 원인을 제공했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과 민주적 발전을 위한 국제적 환경 조성에 일본이 역사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본다.

 


시이 가즈오와 ‘풀뿌리 민주주의’


 

현장 (풀뿌리 운동)과 의회 정치의 결합에 따라 정치 변혁과 대중적 요구의 실현은 의회 내부의 활동만으로 성립하지 않으며, 현장에서 나오는 고발 및 시민 운동과 의회 질의가 결합할 때 이루어진다고 본다. 기업의 불법 초과 근무 (서비스 잔업) 추궁, 대부업체 고금리 (그레이 존 금리) 철폐, 중고 가전 PSE 마크 강제 규제 철회, ‘애국심 통지표’ 문제 시정 등의 사례를 들어, 현장의 구체적 고발과 대중 운동을 바탕으로 의회에서 총리나 정부 부처를 추궁해 현실을 바꾸는 방식을 핵심적인 정당 활동 모델로 제시한다.

 

기념비적이고 거대한 정강 정책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다중 채무·파산 등 시민의 삶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문제 해결을 정당의 본분으로 삼는다. 그는 20년 이상 쌓아온 생활 상담 활동과 지역 지부의 밀착 대응을 공산당 특유의 강점으로 내세우며, 민중의 실제적 이익을 수호하는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일본 내 자민당, 공명당, 민주당 등이 기득권 세력이나 대부업체 등 이익 단체의 후원금 및 헌금에 얽매여 대기업과 금융업계의 불법·폭리를 묵인할 때, 공산당은 기업 기부금이나 국가 정당 보조금을 받지 않기에 타협 없이 강력한 추궁을 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당시 전국 2만 4,000여 개 지부, 3,385명의 지방 의원, 130만 명의 《신문 아카히타》 독자 등 풀뿌리 네트워크를 당의 최대 자산으로 여긴다. 나가사키, 미야자키, 훗카이도 등 농촌 지역에서 지방 의원 수와 점유율을 늘려가는 성과를 제시하며, 지역 주민과 밀착하여 성실히 일하는 의정 활동이 정당 신뢰의 근간이라고 판단한다.


 

시이 가즈오의 연설문에 나타난 일본 공산당의 특징


 

일본 공산당은 주민 이익에 밀착한 실천적 지방 의정 활동을 중요시한다. 의원의 자격은 당파가 아니라 ‘주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제대로 발언하고 행동하는가’에 달렸다고 본다. 나가사키현 코야기초나 이바라키현 쿠즈우마치 사례처럼, 지방 합병으로 소외된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현장에서 솔선수범하는 의정 활동이야말로 보수 성향 주민들의 지지까지 이끌어내는 원동력이라 평가한다.

 

시이 가즈오가 내린 일본 공산당의 가장 큰 자산은 현장 지강과 지역에 뿌리내린 풀뿌리 조직이다. 과거부터 이어진 부당한 차별과 반공 공격 속에서도 노동자와 시민의 이익을 지켜온 단련된 조직력을 당의 힘으로 본다. 서유럽과 달리 일본 내에 잔존하는 공산당에 대한 편견과 공격에 굴하지 않고, 아래로부터의 풀뿌리 조직을 계속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 공산당이 84년간 당명을 바꾸지 않고 유지해 온 근거는 과거 제국주의의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목숨을 걸고 반대해 온 일관된 역사에 있다. 전쟁 직전 당을 해산하거나 재편하여 전후 이름을 바꾼 타 정당들과 달리, 침략에 맞선 도덕적 자부심이 있기에 당명을 고수할 수 있으며, 이 역사가 동아시아 국가들과 신뢰를 형성하는 핵심 기초가 된다고 판단한다.

 

자민당과 민주당 내 우익 세력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등)이 추진하는 교육기본법 개악, 교육칙어 찬양, 야스쿠니 신사 참배 정례화 등을 강력히 비판한다.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고 전전(前戰)의 제국 의회 시절로 돌아가려는 시도는 ‘해외에서 전쟁을 수항하는 나라’를 만들고 평화헌법 9조를 파괴하는 행위이므로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이에 따라 우익 개헌파의 역사 왜곡과 군국주의 회귀를 비판한다.

 

시이 가즈오는 민주당을 비롯한 여타 야당들은 자민당 출신 인사들이나 과거 연립 정부에 참여했던 세력들이 합류하여 만든 집단에 불과하여 자민당 정치의 가담자이자 패배의 역사를 공유한다고 본다. 전후 정치사에서 자민당 정치에 맞서 일관되게 대립각을 세우고 고유한 정체성을 지켜온 정당은 일본 공산당뿐이라고 강조한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 및 혁명적 정당론의 비판

 

 

시이 가즈오의 주된 논지는 계급 투쟁이나 자본주의 생산 양식 자체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 아닌, ‘주민의 이익 대변’, ‘의회에서의 적극적인 발언’, ‘역사 인식 (식민지 지배 및 침략 전쟁 반대)’ 수준에 그친다. 이는 마르크스·레닌주의가 강조하는 생산 수단의 사회화, 프롤레타리아 독재, 자본주의 체제 폐지와 같은 변혁적 사상 체계가 철저히 배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글의 전반도 자본주의 내 개량 및 민주주의적 가치로 수렴되며, 핵심 가치는 ‘평화헌법 수호’, ‘교육기본법 개악 저지’, ‘의회 민주주의 내 정당한 의정 활동’ 등 거대 정당들에 맞선 ‘자유민주주의적·헌법적 가치의 원상 복원’에 가까운 개념들이다. 사상적 기반이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이나 경제학 비판에 기초하기보다, 전후 일본의 평화주의 및 개혁적 민주주의 범주 내에 머물러 있다.

 

 

실천적 행보에서 배제되어 있는 지향점

 

 

시즈 가즈오가 강조하는 현장과 풀뿌리 조직의 역량은 결국 ‘의회에서의 추궁과 발언’, ‘선거에서의 승리’, ‘지방 의석 확보’라는 의회 정치적 결과물로 수렴된다. 이는 노동자 계급의 총파업이나 체제 변혁을 목표로 하는 노동 운동 등 의회 제도의 틀에 국한된 것이 아닌 실천적 총파업·대중 투쟁 노선이 실질적으로 배제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일본 공산당 내에서도 자민당·민주당 등 기존 정치 세력의 도덕적 타락과 우경화, 개헌 시도에 대해서는 강력히 비판하지만, 국가 기구 체제 자체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 배제되어 있어 현대 자본주의 국가 기구 (의회, 법원, 행정 조직) 자체의 계급적 성격에 대한 비판은 찾아보기 어렵다. 의회라는 기존의 제도적 틀 내부에서 ‘더 정직하고 깨끗하며 주민을 위해 일하는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의회주의적 개량주의에 실천에 방점이 찍혀 있다.

 

국제주의적 단결 및 생산 현장 중심 투쟁의 한계도 보인다.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교류 기준 역시 ‘과거 침략 전쟁에 반대했던 역사적 도덕성’과 ‘신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자본의 세계화에 맞서는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단결이나, 생산 현장에서의 노동자 자치·통제와 같은 노동 중심적 실천 지향은 담론에서 제외되어 있다.

 

 

시이 가즈오와 일본공산당의 소련 비판 및 그 역사적 한계

 


시이 가즈오와 일본공산당이 보인 소련 비판은 전후 일본이라는 정치·지형학적 조건 속에서 자당의 생존과 대중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내린 전략적 선택의 성격이 짙다. 이러한 방식의 소련 비판과 정세 대응이 지닌 역사적 한계는 분명하다.

 

일본공산당의 소련 비판은 관료주의화된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자본주의로의 이행기에서 발생시킨 생산관계의 왜곡이나 계급적 한계를 구조적으로 규명하는 데로 깊이 나아가지 못했다. 대신 소련의 일국패권주의, 인권 억압, 독재적 통치 스타일 등을 비판하며 “우리는 저들과 다른 성숙한 민주주의 정당”임을 증명하는 데 집중했다. 이는 자본주의 세력의 반공 공세를 방어하는 데는 효과적이었을지 몰라도, 마르크스주의 정당으로서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 원인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사회적 생산 양식과 사회 모델을 제시하는 사상적 심화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시이 가즈오는 과학적·체제론적 비판이 아닌 ‘도덕적·자유주의적’ 선 긋기의 한계를 보인다.

 

소련 및 서기장파와의 대립 (1960년대 50년 문제 및 중·소 분쟁 등) 과정에서 형성된 일본공산당의 ‘자주 독립 노선’은, 의회주의적 자당 방어를 위한 정략적·사후적 정당화의 한계를 보이며 냉전기 일본 내에서 ‘스탈린주의의 하수인’이라는 공격을 피하고 의회 내 의석을 확보하기 위한 선거 공학적 목적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정치적·지형학적 압박에 대응해 사후적으로 소련을 ‘사회주의가 아닌 패권주의’로 규정하여 단절을 선언하는 방식은, 마르크스주의적 원칙에 입각한 일관된 정세 분석이라기보다 의회 내 입지 강화를 위한 정세 추종적 탈색에 가깝다는 한계를 지닌다.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원리 중 하나는 전 세계 노동자 계급의 국제적 단결이다. 그러나 소련과 동구권 체제를 단순히 ‘거부하고 단절해야 할 대상을 넘어선 타자’로 규정하고 자국 내 선거와 평화헌법 수호라는 일국적 과제에 집중하면서, 국제 공산주의 운동 및 세계 수준의 반자본주의 연대 전선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냉전 이후에도 세계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맞서는 국제적 노동자 투쟁의 축을 구축하지 못하고, 일본 내부의 서구식 사회민주주의적 개량 정당과 유사한 지위에 머물게 된 원인이 되었다.

 

소련의 실패와 거리를 두기 위해 ‘자유’, ‘민주주의’, ‘의회 절차’, ‘헌법 수호’를 과도하게 강조한 결과, 일본 공산당의 노선은 체제 내화에 따른 변혁적 동력을 상실하고, 자본주의 국가 기구와 법질서 자체를 승인하는 틀 안에 갇히게 되었다. 소련식 독재를 경계하는 과정에서 체제 자체를 흔드는 혁명적·변혁적 실천 지향까지 함께 탈색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자민당 정권이 구축한 전후 체제 내부에서 ‘가장 깨끗하고 성실한 야당’이라는 제약된 역할에 스스로를 가두는 역사적 한계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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