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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운진 (國運盡): 국가의 명이 다하다.

 

천문의 운행은 지금도 회전한다. 대지에 선 인간은 기계의 부품처럼 만사가 아무런 미동이 없다 여기며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전부 누리려 한다. 아무리 ‘백성이 주인이라’ 여기는 사람일지라도, 그 말조차 자신이 가진 지배력을 위함이 될 수 있음은 세상살이가 불합리한 일의 연속이고, 누구나 한번쯤 겪게 되는 시련과도 같다. 여기에 엎친 데 덮쳐 가치관의 충돌로 인한 인간 간 마찰도 피할 수 없다. 이 시점에서 국가가 탄생한 이후로 인간은 자신들의 공고한 지배 체제가 없으면 천문의 운행도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 여겨온 것도, 지난날의 과오로 인해 국가는 이제 낡은 체제의 산물이 되는 요즘이다.

 

글만으로는 사람의 속내를 도저히 알 수 없다. 모두가 ‘세상의 주인’이라 말할 때 뒤에서는 업신 여기는 심보가 서로를 기만하게 만들었다. 노동자의 본래 모습도 처음에는 민중이었다. 이들은 누군가를 섬기기 위해 탄생한 존재들이 아니다. 본래 모습 그대로 자신으로 살고자 전쟁과 병마를 치르고 생사를 오가며 치열하게 사투를 벌인 이들이다. ‘붉은 별이 없었다면 조선의 명운은 벌써 다했을 것’이라는 중요한 말처럼, 정작 민심의 일부라 자처하는 이들조차 나중에는 자신의 본래 모습을 잊고 거역하고 만다. 자신이 주인이라 말하면서도 어느 청년의 굶주림을 외면하는 이들과는 달리, 십시일반의 나눔 덕분에 이 청년은 자신의 굶주림에서 그나마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누군가를 섬기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까지 전근대의 역사는 국가를 지탱하기 위해 존재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지금도 국가가 천문의 운행이라 자부하는 자들도, 가슴에 손을 얹고 참말로 세상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묻는다. 단순히 재물이 많고 지배력을 소유한 자인가. 또는 자신의 기술과 능력을 끊임없이 과시하며 겸비한 이들인가. 아니면 세상에 태어나 평생을 하대된 자신과 같이 소외된 비천한 자들에게 끝까지 헌신하는 이들인가. 힘찬 북소리처럼 노예의 쇠사슬에 얽힌 전 세계의 국민들은 이 질문에 항변하여 일어나 답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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