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공산 연구소


'성과 노동'


부유한 여성이 젠더를 운운할 때면, 가난한 여성은 자신의 섹스에 대해 고민한다. '좋았어'라는 말만큼 가장 곤란한 말도 없다. 이들이 자신에 대해 당당하게 노동자로 밝히는 일은 드물다. 아마도 성과 노동은 젠더로 매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남성과는 달리 가난한 여성이 자신의 노동에 대해 글을 쓰는 일 또한 극히 드물다. 부유한 여성들은 자신보다 낮은 위치의 여성들을 포용하며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지만, 가난한 여성들은 그러할 힘조차 가지고 있지 못하는 부실한 생계를 겨우 유지하며 제 자리를 지켜낼 뿐이다.

 

동성애자들이 무지개를 밝히며 다양성의 권리를 말할 때에도, 가난한 여성은 평생을 고민해 온 자신의 신체 그 자체를 부정하며 외형을 고쳐야 한다는 강박에 다시금 사로잡힌다. 여성들은 서로 공감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노동자 여성에게 ‘자신을 꾸미는 일’조차 여전히 억압이다. 이들에게 가해지는 피상적인 위로가 오히려 이들을 더욱 소외시킨다. 자신에 대해, 그리고 하물며 노동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는 여성은 전체 중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부르주아 여성의 서사를 성실히 뒤따르며 자리매김하는 동안에도, 일터의 여성들은 일부 남성들의 부당한 대우와 언행을 견디며 사회적 모욕을 감수하거나, 같은 여성 사이의 계급 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을 암묵적으로 겪게 된다. 그러나 일터의 여성들은 자신의 부당함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부유한 여성처럼 이 세계가 온전히 자신의 것이어서가 아니라, 그러한 오만 자체에 대응할 여력조차 없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누구보다 가장 성실하게 일하며 또한 자본 노동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을 수 있지만, 그러나 그 대가로 자신을 돌볼 시간마저 빼앗긴다. 부유한 여성들에 비하면 가난한 여성들은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지 못한 채 침묵하는 것, 이것이 여성의 주관성에 부여된 가장 악명 높은 굴레가 된다. 온갖 이론으로 무장한 성적 담론들이 일터에서조차 소외된 그녀들에 대해 오히려 옥죄고 있는 것이다.

 

당신들은 동등한 성적 권리를 말하면서도 그 대우가 노동자에게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놓여 있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당신들은 가장 우월한 위치에 도취해 상대를 비하할 자격을 갖지만, 그 누구도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그저 자신의 경제적 위치를 더 높은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방식만으로 스스로를 드높이고 있던 것이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