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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 여전히 소외된 노동의 현주소


올해는 조금 특별한 날이다. 국가가 5월 1일을 ‘근로자의 날’ 대신 ‘노동절’로 공식 명칭을 공표하였기 때문이다. 그간 노동자들은 임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주체적 존재가 아닌, 단순히 ‘성실히 일하는 사람’을 뜻하는 ‘근로자’라는 명칭 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가두어 왔다. 이번 명칭의 개정으로 인해 노동자들은 비로소 자신을 ‘노동자’ 부를 수 있는 정당한 명분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이처럼 자신의 정체성조차 국가와 법의 허락을 얻어야만 겨우 인정받을 수 있는 현실은, 노동자의 처우가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노동자라는 본성을 지니는 순간, 가족의 안위는 물론 자신의 생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극한의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민주노총에서 활약했던 철도 노조원 출신을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했음에도, 노동절을 하루 앞두고 현장 노동자들에게 ‘책임 의식’만을 강조하고 나섰다. 화물 연대를 비롯한 전국 단위 노조들이 노동권 증진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이를 ‘귀족 노조’나 ‘좌파적 요구’라는 형식에 가두며 이제는 정부가 노동자를 책망하고 있다. 노동자 내부의 갈등을 견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정부가 노동절 전날 공공연하게 노조를 규탄하고 나선 것이다.

 

교섭 과정에서 문제는 심각하다. 「매일 노동 신문」 등의 보도에 따르면 사측 기업 대부분이 정당한 요구를 외면하고 있음에도, 「노동자 연대」는 이러한 본질적 문제 전반을 강력히 제기하지 못한 채 정부의 입장에 끌려다니며 간접적으로 대변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더욱이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노동자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거듭 강조하지만, 이는 이미 부유한 정부의 입장에 순응하라는 ‘통합형 요구’이자 노동자의 목소리를 제한하려는 굴레에 불과하다. 그사이 언론의 외면 속에서 화물 노동자들은 불의의 사고로 산재를 당했다. 정부와 노동부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공식적인 언급을 자제하며 침묵을 지켰다.

 

국민들의 개혁 기대감은 높지만, 그 자신의 실적과 지지율의 성과를 의식하며 내뱉는 정부의 ‘친절한’ 발언들은 노동자를 하대하는 태도와 맞물려 모순을 빚고 있다. 이는 투쟁하는 노동자를 회유하기 위해 벌이는 기업의 인질극과 닮아 있다. 성과제를 두고 의견이 분분할 때에도 논쟁에서 중요한 점은 노동자가 정당한 몫의 임금을 요구하는 것임에도, 정부는 노동자의 처절한 현실 대신 겉으로 보이는 ‘그 사회의 정상성’에만 표면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생존에 위협받는 이들을 더 위험한 노동으로 내몰면서, 정작 복지를 수혜받는 사람들의 ‘투정’으로 치부한다. 사법 시험 합격과 출세주의를 훈장처럼 내세우는 정치인들이 ‘노동자의 정치적 노력’을 부정하는 것은, 결국 자신들만의 우월한 오만에 대한 발로일 뿐이다. 그리고 그 자신들도 ‘근로’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이번 정부의 발언은 여전히 노동자와 선을 긋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비약적인 자본의 축적과 주식 시장의 활황 속에서도 산재 노동자와 현장 노동자들은 스스로 정당한 몫을 요구하지 못한 채, ‘좌파적 요구’라는 제약 속에 갇혀 있다. 오늘 전태일 열사 동상을 자발적으로 깨끗하게 청소하는 일반인들의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와는 반대로, 전태일의 헌신을 잊지 않겠다던 그 ‘청렴한’ 정부가 이제는 노동자의 현실을 외면하는 ‘불손한’ 정부라는 실체를 숨기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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