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생산 과정의 분석을 위하여
본 분석에서는 가치와 생산 가격의 차이를 도외시한다. 사회적 총자본의 연간 총생산물 가치를 고찰할 때, 개별 상품 수준에서 나타나는 가치와 생산 가격의 편차는 상쇄되어 소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총생산물의 가치 구성과 그 배분 구조를 분석함에 있어 두 개념의 일치는 논리적 타당성을 지닌다.
이윤 (기업가 이득 + 이자) 및 지대는 상품에 체현된 잉여 가치가 분할되어 나타나는 특수한 형태(들)에 불과하다. 잉여 가치의 크기는 이들 분할 부분들의 합계에 대한 양적 한계를 설정하며, 따라서 평균 이윤과 지대의 총합은 잉여 가치의 총계와 일치한다. 비록 상품에 포함된 잉여 가치 (잉여 노동)의 일부가 직접적으로는 평균 이윤 형성을 위한 균등화 과정에 참가하지 않음에 따라, 상품 가치의 특정 부분이 가격으로 온전히 표현되지 않는 경우가 존재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다음과 같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첫째, 가치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되는 상품이 불변 자본의 구성 요소가 될 경우 이는 이윤율의 상승으로 이어져 가치와 가격 사이의 편차를 상쇄한다. 반면, 해당 상품이 개인적 소비 수단으로서 수입을 매개로 소비될 경우에는 이윤과 지대가 더 많은 양의 생산물로 표현됨에 따라 사회적 등가성이 달성된다.
둘째, 이러한 불일치는 평균적인 운동 과정에서 상쇄되어 제거된다. 가치 형성 과정에서 제외되는 경우에라도 상품 가격으로 구체화되지 않는 잉여 가치 부분이 존재할 수 있으나, 전형적인 상태에서의 평균 이윤과 지대의 총액은 총 잉여 가치를 초과할 수 없으며 다만 그보다 작을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 전형적인 형태란 노동력 가치에 부합하는 임금 지불을 전제로 한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독점 지대 또한 임금의 공제분으로부터 형성되는 특수한 형태가 아닌 한, 언제나 간접적으로는 잉여 가치의 일부로 귀착된다. 독점 지대가 차액 지대의 경우처럼 개별 생산 가격을 초과하는 초과분의 일부가 아니거나, 또는 절대 지대의 경우처럼 평균 이윤을 초과하는 잉여 가치의 잉여분이 아닐지라도, 이는 여전히 당해 독점 상품과 교환되는 타 상품들에 체현된 잉여 가치의 일부를 구성한다. 곧, 독점 지대는 사회적 총 잉여 가치가 재분배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전된 가치 형태다.
평균 이윤과 지대의 총액은 그것들의 원천인 분할 이전의 이미 주어진 잉여 가치의 크기를 초과할 수 없다. 따라서 상품에 내포된 총 잉여 가치 (총 잉여 노동)가 가격으로 온전히 실현되는지 여부는 본 분석의 본질적 타당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실제로 잉여 노동은 완전히 실현되지는 않는다.
노동 생산성의 끊임없는 변화로 인해 사회적 필요 노동 시간이 끊임없이 변동하며, 이에 따라 불리한 조건 아래에서 생산된 일부 상품은 필연적으로 개별 가치 이하로 판매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윤과 지대의 합계는 실현된 잉여 가치 (잉여 노동)의 총량과 일치하며, 본 연구의 목적상 실현된 잉여 가치는 총 잉여 가치와 동일한 것으로 상정할 수 있다. 이윤과 지대는 실질적으로 실현되어 상품 가격에 산입된 잉여 가치에 해당하므로, 현실적 관점에서 이들은 가격의 구성 부분을 이루는 총 잉여 가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수입의 제3의 형태인 임금은 언제나 자본의 가변적 구성 부분, 곧 생산 수단이 아닌 살아있는 노동력의 구매와 노동자에 대한 보상에 투입되는 부분과 일치한다. 가사 노동 (하인의 노동)과 같이 수입의 지출로 구매되는 노동은 임금·이윤·지대에서 사후적으로 지불되는 것이므로, 상품 가치의 원천적 구성 요소를 형성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유형의 노동은 상품 가치의 본질적 구조를 분석하는 고찰 대상에서 제외된다.
임금은 노동자의 총 노동 시간 중 가변 자본의 가치, 곧 노동의 가격이 재생산되는 부분이 대상화된 결과다. 이는 상품 가치의 구성 부분 중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 가치 또는 노동의 가격을 실질적으로 재생산하는 영역에 해당한다.
노동자의 총 노동 시간은 두 부분으로 분할된다. 전반부는 노동자가 자신의 생활 수단 가치를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을 수행하는 부분으로, 이는 대가가 지불되는 부분이면서 동시에 노동력의 유지와 재생산에 필수적인 필요 노동에 해당한다.
노동 시간의 나머지 부분 전체, 곧 노동자가 임금 가치를 상회하여 수행하는 초과 노동 (초과 노동량) 전체는 잉여 노동이자 미지불 노동을 구성한다. 이는 생산된 총 상품 가치 중 잉여 가치 (및 초과 상품량)로 나타나며, 이 잉여 가치는 다시 이윤 (기업가 이득 + 이자) 및 지대라는 세분화된 명칭의 수입 형태로 분할된다.
따라서 상품 가치 중 노동자가 일정 기간 추가하는 총노동이 실현되는 부분 전체, 곧 연간 생산물의 가치 중 새로이 창출된 가치 전체는 임금의 가치, 이윤, 지대로 분할된다. 이는 총노동이 자신의 임금을 형성하는 필요 노동과, 이윤 및 지대로 분할되는 잉여 가치를 형성하는 미지불 잉여 노동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이 총노동 이외의 다른 어떠한 노동을 수행하지 않으며, 생산물 가치 중 임금·이윤·지대의 형태를 취하는 부분 전체 외에 다른 어떠한 가치도 형성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연간 생산물 가치 중 당해 연도에 새로 추가된 노동을 대표하는 부분은 가변 자본의 가치인 임금과, 이윤 및 지대의 형태로 분할되는 잉여 가치의 합과 일치한다.
결과적으로 연간 생산물 가치 중 당해 연도에 창출된 부분 전체는 임금의 가치, 이윤, 지대라는 세 가지 수입의 연간 가치 총액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연간 가치 생산물 (v+s) 내에서 자본의 불변 부분 (c)의 가치가 재생산되지 않음은 분명하다. 임금은 생산에 투하된 가변 자본의 가치량과 일치하며, 지대와 이윤은 투하 자본의 총자본 가치 (불변 자본 + 가변 자본)를 상회하여 생산된 잉여 가치 (가치 초과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윤과 지대의 형태로 전환된) 잉여 가치의 일부가 수입으로서 소비되지 않고 축적에 투입되는지 여부는 본 분석의 핵심 쟁점과 무관하다. 잉여 가치 중 축적 기금으로 전용되는 부분은 새로운 추가 자본의 형성을 뒷받침할 뿐, 기존 자본 (노동력 또는 노동 수단에 지출된 자본)의 보충에는 기여하지 않는다. 따라서 분석의 명료성을 위해 모든 수입은 전액 개인적 소비로 지출된다고 전제한다.
이 시점에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한편에서는 임금·이윤·지대라는 수입들이 소비 수단으로 삼는 연간 생산물의 가치에는 당해 생산 과정에 투입된 불변 자본 (c)의 가치량과 동등한 가치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곧, 연간 생산물의 가치는 가변 자본 (v)과 잉여 가치 (s)로 분해되는 수입 부분 외에도, 생산 수단의 가치 이전을 의미하는 불변 자본 가치를 구성 요소로 가진다. 결과적으로 연간 생산물의 총가치는 ‘임금 + 이윤 + 지대 + c’의 식으로 정식화되며, 여기서 c는 불변 자본의 가치를 지칭한다.
그렇다면 연간 새롭게 창출된 가치 (임금+이윤+지대)가 어떻게 그보다 큰 ‘임금+이윤+지대+c’의 가치를 지닌 총생산물을 구매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곧, 당해 연도에 창출된 가치 총액이 어떻게 그 자신의 크기를 상회하는 가치를 보유한 생산물 전량을 흡수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분석의 핵심적 과제로 부각된다.
다른 한편으로, 불변 자본 중 생산물로 이전되지 않아 (따라서 비록 그 가치는 감소하지만) 연간의 상품 생산 이후에도 잔존하는 부분, 곧 사용되나 아직 완전히 소비되지 않은 고정 자본을 분석에서 제외한다면 다음과 같은 국면이 나타난다. 원료와 보조 재료 형태로 투입된 불변 자본은 전량 새로운 생산물로 이전된 반면, 노동 수단은 일부만이 완전히 마모되거나 부분적으로 소비되어 그 가치의 일부만이 생산 과정에서 이전된 상태다.
생산 과정에서 완전히 소비된 불변 자본의 부분은 반드시 현물로 보전되어야 한다. 노동 생산성을 비롯한 제반 조건이 일정하다면, 해당 부분을 대체하는 데에는 이전과 동일한 노동량이 필요하다. 이는 곧 동등한 가치로의 보충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재생산을 위한 노동은 누가 수행해야 하며, 실제로 누가 이 노동을 수행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첫 번째 문제, 곧 생산물에 포함된 불변 자본 가치의 지불 주체와 수단에 관하여 살펴보면, 생산 과정에서 소비된 불변 자본의 가치는 생산물 가치의 구성 부분으로 재현된다고 상정된다. 이는 불변 자본의 보충 문제를 다루는 두 번째 논의의 전제와도 논리적으로 배치되지 않는다.
『자본』 제Ⅰ권 제7장 ‘노동 과정과 가치 증식 과정’에서 규명된 바와 같이, 새로이 투입된 노동은 기존 가치를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여 기존 가치에 부가할 뿐이다. 다만 새로운 노동이 추가되는 과정에서 이전의 가치는 생산물로 이전되어 그 내부에 보존되는데, 이는 노동의 추상적 가치 형성적 특성 (곧 노동 일반으로서의 특성)이 아니라 구체적 유용 노동 (일정한 생산적 노동으로서의 노동)으로서 수행하는 기능에 기인한다.
따라서 연간 창출된 총가치인 수입이 지출되는 생산물 속에 불변 자본의 가치 부분을 유지하기 위한 별도의 노동은 요구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년도에 가치와 사용 가치 측면에서 소비된 불변 자본을 실질적으로 보충하기 위해서는 추가적 노동이 필요하다. 이러한 보충이 수행되지 않으면 사회적 재생산 자체가 중단되기 때문이다.
새로 추가된 노동 전체는 연간 새로운 창출 가치로 표현하며, 이는 전부 임금, 이윤, 지대라는 세 가지 수입으로 귀착된다. 그러므로 한편으로는, 소비된 불변 자본의 보충을 위해 배분될 잉여의 사회적 노동이 존재하지 않는 결과가 초래된다. 여기서 불변 자본의 보충이란, 소비된 불변 자본은 부분적으로는 현물과 가치의 면에서 재생산되어야 하고, 부분적으로는 고정 자본의 마멸분의 경우 단순히 가치의 면에서 재생산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연간 노동으로 창출되어 (임금·이윤·지대의) 세 가지 수입 형태로 지출되는 가치 총액은, 수입의 가치를 상회하여 불변 자본 가치까지 포함하고 있는 연간 총생산물을 구매하거나 지불하기에는 불충분한 것으로 파악된다.
상기한 과제는 『자본』 제Ⅱ권 제3편에서 사회적 총자본의 재생산을 고찰하며 이미 해결된 바 있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해당 문제를 재차 규명하는 이유는,
첫째, 제Ⅱ권의 논의 단계에서는 잉여 가치가 아직 이윤 (기업가 이득 + 이자) 및 지대라는 구체적 수입 형태로 전개되지 않아 이를 포괄적으로 다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둘째, 애덤 스미스 이래의 근대 경제학 전반을 지배하는 고질적인 오류가 바로 임금, 이윤, 지대라는 수입의 형태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Ⅱ권에서 우리는 사회적 총자본은 두 개의 부문, 곧 생산 수단을 생산하는 제1부문과 개인적 소비 수단을 생산하는 제2부문으로 구분되었다. 특정 생산물 (예: 밀·곡물)이 개인적 소비와 생산 수단이라는 양면적 용도를 지닌다는 사실이 이러한 분할의 타당성을 결코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 분할은 결코 가설이 아니라 사실의 표현일 따름이다.
한 국가의 연간 총생산물 중 일부는 그 물질적 성격과 무관하게 궁극적으로 개인적 소비 영역으로 귀속되며, 이 생산물에 대해 임금, 이윤, 지대라는 수입이 지출된다. 이 영역의 생산물은 사회적 자본의 특정 부문인 제2부문의 생산물이다.
설령 동일한 생산 부문 내에서 제1부문에 속하는 생산 수단을 동시에 생산하더라도, 그러나 해당 자본이 생산적으로 소비될 생산 수단을 공급하는 한, 그것은 현실적으로 개인적 소비에 들어가는 생산물을 생산하는 자본은 결코 아니다.
개인적 소비에 제공되어 수입의 지출 대상이 되는 제2부문의 생산물 전체는, 해당 생산에 소비된 자본과 거기서 창출된 잉여분을 합산한 존재 형태다. 따라서 그것은 오로지 소비 수단 생산에 투하된 자본의 생산물로 규정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원료나 노동 도구 등 재생산 수단으로 기능하는 제1부문의 연간 생산물은, 설령 그것이 아무리 잠재적으로 소비 수단으로서 전용 여지를 지녔다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생산 수단 생산에 투하된 자본의 생산물일 뿐이다.
불변 자본을 구성하는 생산물의 대부분은 물질적 형태상 개인적 소비가 배제된 상태로 존재한다. 가령 농민이 종자용 곡물을 전용하거나 역우를 도축하여 소비할 경우 초래될 경제적 파국이 막대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변 자본을 구성하는 생산물은 본래부터 소비가 허용되지 않는 고유의 현물 형태를 보전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기술한 바와 같이, 본 논의에서는 두 부문 모두에서 연간 생산물과 무관하게 현물 및 가치 형태로 존속하는 불변 자본 중 고정 자본 부분은 도외시한다.
수입이 소비되는 제2부문의 생산물 가치는 임금·이윤·지대가 지출되는 세 가지 성분으로 구성된다.
제1부분은 생산 과정에서 소비된 불변 자본의 가치와 동등한 부분이다.
제2부분은 임금으로 투하된 가변 자본의 가치와 동등한 부분이다.
제3부분은 생산된 잉여 가치 (이윤 및 지대)와 동등한 부분이다.
이때 제2부문 생산물의 제1부분인 불변 자본 가치는 해당 부문의 자본가, 노동자, 토지 소유자 중 누구도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 이 부분은 수입의 구성 요소가 아니므로, 반드시 현물로 보충되어야 하며, 이 보충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 부분이 판매되어야 한다. 반면, 제2부문 생산물의 나머지 두 부분은 해당 부문 내에서 창출된 수입, 곧 임금, 이윤, 지대의 합계 가치와 동등하다. (‘단순 재생산 표식’을 상기할 것).
제1부문 생산물 가치 또한 형태상으로는 위와 동일한 부분들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 부문에서 수입 (임금, 이윤, 지대)를 구성하는 가변 자본 + 잉여 가치의 합계는 제1부문의 생산물의 그 현물 형태상 소비되지 않고, 제2부문의 생산물로 전환되어 소비된다. 곧, 제1부문의 수입 구성 부분은 그 물질적 형태상 생산 수단이기에 생활 수단인 제2부문의 생산물과 교환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제1부문의 수입 가치는 제2부문의 생산물 중 보충되어야 할 제2부문의 불변 자본 부분의 소비에 투입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제2부문 생산물 중 자신의 불변 자본을 보충해야 할 가치량에 해당하는 부분은 제1부문의 노동자, 자본가, 토지 소유자에게 그 현물 형태로 소비된다. 이들은 자신들의 수입을 해당 제2부문 생산물의 구매에 지출함에 따라 이 과정을 완결한다.
다른 한편으로, 제1부문의 수입을 체현하고 있는 제1부문의 생산물은 제2부문에서 현물 형태로 구매되어 생산적으로 소비된다. 이 과정에서 제2부문은 자신의 불변 자본 부분을 제1부문으로부터 공급받은 생산 수단으로 실질적으로 보충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제1부문에서 소비된 불변 자본 부분은 노동 수단, 원료, 보조 원료 등으로 구성된 해당 부문 자체의 생산물로 보충된다. 이러한 보충은 부분적으로는 제1부문 내 자본가들 사이의 상호 교환으로 이루어지거나, 부분적으로는 자본가 일부가 자신이 생산한 생산물을 생산 수단으로 직접 재투입하며 수행된다.
『자본』 제Ⅱ권 제20장 2절에서 제시된 단순 재생산 표식은 다음과 같다.
Ⅰ. 4,000c + 1,000v + 1,000s = 6,000
Ⅱ. 2,000c + 500v + 500s = 3,000
Ⅰ + Ⅱ = 9,000
사회적 총생산물의 가치 합계 (Ⅰ + Ⅱ)는 9,000에 달한다.
이 표식에 따르면, 제2부문에서는 노동자·자본가 및 토지 소유자에게 500v + 500s = 1,000의 가치가 수입으로 소비되며, 보충되어야 할 2,000c가 잔여분으로 남는다. 이 잔여분은 제1부문의 노동자, 자본가, 토지 소유자 (지대 취득자)가 보유한 1,000v + 1,000s = 2,000의 수입으로 소비된다. 곧, 제2부문의 소비될 생산물은 제1부문의 수입으로 처분되며, 생산 수단의 형태를 취하여 직접 소비될 수 없는 제1부문의 수입 부분은 제2부문의 불변 자본을 보충하는 데 생산적으로 소비된다.
한편, 아직 제1부문의 4,000c에 대한 설명이 남아 있다. 이 가치 부분은 제1부문 생산물 6,000 중 제2부문의 불변 자본으로 이미 전환된 2,000을 제외한 잔여분 4,000 (= 6,000 – 2,000)으로 보충된다. 곧, 제1부문 내에서 생산된 생산 수단이 다시 제1부문의 불변 자본을 현물 및 가치 형태로 복구하는 데 투입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점은 상기 수치들이 예시를 위해 임의로 설정된 것이며, 이에 따라 제1부문의 수입 가치와 제2부문의 불변 자본이 일치하는 설정 또한 자의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축적을 도외시한 단순 재생산 과정이 원활하게 지속되기 위해서는, 제1부문의 임금, 이윤, 지대의 총액이 제2부문의 불변 자본 부분의 가치와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 이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제2부문은 자신의 생산에 필요한 불변 자본을 보충할 수 없게 되며, 또한 제1부문 역시 자신의 수입을 소비할 수 없는 현물 형태인 생산 수단으로부터 실제 소비할 생활 수단 (소비 수단)으로 전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간 상품 생산물의 가치는 개별 투하의 상품 생산물의 가치나 개별 상품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두 부분, 곧 투하된 불변 자본의 가치를 보전하는 부분 A와 임금·이윤·지대라는 수입 형태로 나타나는 부분 B로 분할된다. 기타 사정이 일정하다면, 부분 A는 (1) 결코 수입의 형태를 취하지 않으며 (2) 언제나 자본, 특히 불변 자본의 형태로 환류한다는 점에서 부분 B와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그러나 부분 B 역시 내부적 구별을 포함한다. 이윤, 지대, 임금은 모두 수입의 형태를 취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이윤과 지대가 잉여 가치 (미지불 노동)를 체현하는 반면, 임금은 지불 노동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생산물 가치 중 지불된 임금을 대변하며, 따라서 임금을 보충하는 부분, 곧 단순 재생산 전제하에 임금으로 다시 재전환될 부분은 우선 가변 자본 (또는 재생산을 위해 또다시 투하되어야 할 자본의 일부분)의 형태로 환류한다.
이 가치 부분은 이중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우선 자본의 형태로 존재하며 자본으로서 노동력과 교환되고, 이후 노동자의 수중에서 노동력 판매의 대가인 수입으로 전환되어 생활 수단을 구매하는 데 소비된다. 이러한 이중적 과정은 화폐 유통의 매개로 입증된다. 가변 자본은 화폐 형태로 투하되어 임금으로 지불되는데, 이는 자본으로서의 가변 자본이 수행하는 첫 번째 기능이다. 가변 자본은 노동력으로 대체되고 노동력의 현실적 발현인 노동으로 전환되며, 이는 자본가 측에서 진행되는 생산적 소비 과정이다.
그러나 둘째로, 노동자는 수취한 화폐로 사회적 총생산물 중 해당 화폐 가치에 상응하는 부분을 구매하여 이를 수입으로 소비한다. 화폐 유통이라는 매개 수단을 배제하고 고찰한다면,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의 일부는 이미 자본가의 수중에 자본의 형태로 존재한다. 자본가는 이 부분을 새로운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자본으로 투하하고, 곧 이 부분을 새로운 노동력의 대가로 노동자에게 주며, 노동자는 이를 직접적으로 또는 타 상품과의 교환을 매개로 수입으로서 소비한다.
따라서 생산물 가치 중 재생산 과정에서 임금, 곧 노동자의 수입으로 전환될 부분은 우선적으로 자본의 형태 (구체적으로는 가변 자본의 형태)로 자본가에게 환류한다. 이 가치 부분이 자본의 형태로 환류한다는 사실은 노동이 임금 노동으로, 생산 수단이 자본으로, 그리고 생산 과정 자체가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으로 끊임없이 새로 재생산되기 위한 본질적인 조건 중 하나를 이룬다.
불필요한 동일시를 방지하기 위해 총생산물 및 순생산물을 총수입 및 순수입과 명확히 구별해야 한다.
총생산물은 재생산된 생산물 전체를 의미한다. 고정 자본 중 사용되나 소모되지 않은 부분을 제외할 때, 총생산물의 가치는 생산 과정에서 투하되어 소비된 자본 가치 (불변 자본 및 가변 자본) + 잉여 가치 (이윤 및 지대)와 동등하다. 이를 개별 자본의 생산물이 아닌 사회적 총자본의 관점에서 고찰한다면, 총생산물은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을 구성하는 소재적 요소들 + 잉여 가치가 체현된 잉여 생산물의 소재적 요소들과 동등하다.
총수입은 총생산물 가치에서 생산에 투하되어 소모된 불변 자본의 보충분 (또는 이에 상응하는 생산 물량)을 제외한 나머지 가치 부분을 의미한다. 따라서 총수입은 임금 (곧 생산물 중 다시 노동자의 수입으로 환류될 부분) + 이윤 + 지대와 동등하다. 반면 순수입은 임금을 차감한 잔여분인 잉여 가치 및 잉여 생산물을 지칭하며, 이는 실질적으로 자본이 실현하여 토지 소유자와 분할하는 잉여 가치 (또는 이를 척도로 하는 잉여 생산물)를 대변한다.
기존의 분석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개별 상품의 가치와 각 개별 자본의 총 상품 생산물 가치는 두 부분으로 분할된다. 한 부분은 소모된 불변 자본을 보전하는 데 충당되며, 다른 한 부분은 비록 일부가 가변 자본으로서 자본의 형태로 환류할지라도 그 전체는 총수입으로 전환하여 임금·이윤·지대의 형식을 취하며 총수입을 이룬다. 이러한 가치 구성 원리는 사회의 연간 총생산물 가치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따라서 개별 자본가의 생산물과 사회적 총생산물 사이의 유일한 차이는 개별 자본가의 입장에서 보면 순수입이 총수입과 다르다는 점이다 (곧 후자인 총수입은 임금을 포함하지만 전자인 순수입은 임금을 제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 전체의 수입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국민 소득은 임금 + 이윤 + 지대, 곧 총수입 그 자체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 역시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에 기초하여 사회 전체를 자본가적 관점에서 규정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추상에 불과하다. 이는 이윤과 지대로 분해되는 잉여 가치 부분만을 실질적인 순수입으로 간주하고, 노동자의 생존 수단인 임금을 자본의 생산 비용으로 취급하는 자본주의 고유의 경제적 논리를 구체화하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총수입이나, 총생산물 전체가 국민의 순수입과 구별되지 않으며, 국가적 관점에서는 이러한 구별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세 등의 주장은 애덤 스미스 이래 경제학을 지배해 온 불합리한 학설의 극단적 귀결일 뿐이다. 곧, 상품의 가치가 궁극적으로 임금·이윤·지대로만 분해될 수 있다는 잘못된 전제가 필연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논리적 결함에 지나지 않는다.
개별 자본가의 관점에서는 생산물의 일부가 자본으로 재전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기란 매우 용이하다. 다시 말해, (재생산의 확대, 곧 축적을 도외시하더라도) 생산된 가치의 일부는 노동자의 수입으로 기능할 가변 자본으로, 그리고 다른 일부는 수입으로 결코 전환될 수 없는 불변 자본으로도 반드시 재전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란 매우 쉽다. 이러한 가치 환류 과정의 필연성은 생산 과정에 대한 기초적인 고찰만으로도 명백히 드러난다.
그러나 생산 과정 전체를 사회적 총자본의 관점에서 고찰할 때 비로소 난제가 발생한다. 분석에 따르면, 생산물 중 수입 (임금·이윤·지대의 형태)으로 소비되는 부분의 가치는 사실상 이 세 가지 수입의 총액, 곧 수입 가치의 합계로 완전히 해소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때 해당 생산물이 생산적으로 소비되든 개인적으로 소비되든 이는 여기에서 논외의 문제이며, 핵심은 (가치는 분석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소비되는 생산물 가치 전체가 수입의 총합으로 분해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에 있다.
그러나 수입으로 소비되는 생산물 부분의 가치 역시, 수입에 포함되지 않는 다른 생산물 부분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그 가치 내에 불변 자본 가치 c를 반드시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해당 생산물 가치가 결코 오직 수입 가치의 합으로만 국한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결국 한편으로는 현실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가치 보충의 사실이 존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와 대립하는 이론적 모순이 공존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이론적 곤란을 회피하는 가장 손쉽지만 그러나 가장 그릇된 방법은, 상품 가치가 수입을 초과하는 가치 부분이 존재하는 현상을 단지 개별 자본가의 관점에서 포착하기 때문에 비롯된 착시로 치부하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 수입이 타인에게는 자본이 된다.’는 식의 상투적인 문구는 가치 구성의 본질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을 가로막고 논의를 무의미하게 표류시킬 뿐이다.
생산물 전체의 가치가 수입의 형태로 소비될 수 있다면, 옛 자본이 투입된 불변 자본은 어떻게 보충될 수 있겠는가. 각 개별 자본의 생산물 가치가 수입의 합계와 불변 자본 c의 합으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사회적 총자본의 생산물 가치 총액이 오직 세 수입의 합계와만 일치하고 불변 자본 가치는 0이 된다는 설정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은 해결할 수 없는 난제로 귀결되며, 이를 설명하려는 분석은 기초적 구성 요소를 규명하지 못한 채 악순환과 악무한의 오류를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곧, 불변 자본으로 규정되는 가치가 궁극적으로 임금·이윤·지대로 분해된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그 수입 원천들로 구성되는 상품 가치는 다시 동일한 수입 원천들을 매개로 결정된다는 논리적 반복을 끝도 없이 되풀이하게 되는 것이다.
상품 가치가 궁극적으로 임금·이윤·지대로 분해된다는 오류 섞인 학설은, 구매자가 불변 자본을 포함하는 총생산물의 전체 가치를 최종적으로 지불해야 한다거나, 생산자와 구매자 사이의 화폐 유통이 결국 생산자 상호 간의 화폐 유통과 일치해야 한다는 주장 (투크)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그 근거가 되는 기본 명제와 마찬가지로 허구적이다.
이러한 그릇되고 명백히 불합리한 분석을 야기하는 핵심적인 난제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의 근본적 상관관계, 잉여 가치의 본질,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전체 토대가 올바르게 파악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별 자본의 각 생산물, 곧 개별 상품의 가치는 불변 자본 가치의 이전분과 노동자의 임금으로 전환되는 가변 자본 가치, 그리고 향후 이윤과 지대로 분할될 잉여 가치의 일부라는 세 가지 구성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가치 구성의 유기적 구조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분석의 출발점이다.
이 지점에서 노동자가 임금으로, 자본가가 이윤으로, 그리고 토지 소유자가 지대로 상기한 가치 구성 요소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과연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곧, 개별 소득 주체가 각자의 제한된 수입 원천만을 가지고, 그 원천의 합계보다 큰 가치 체계를 지닌 상품을 획득하는 원리를 규명해야 한다.
임금·이윤·지대라는 세 가지 수입 원천의 가치 총액이, 이들 소득 주체의 소비에 충당되는 상품 전체를 구매하는 기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상품들의 가치는 앞서 세 요소 이외에도 불변 자본이라는 추가적 가치 부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수득자들이 세 부분의 가치에 해당하는 수입만으로 어떻게 네 부분의 가치로 구성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가 잔존한다.
이에 대한 분석은 이미 제Ⅱ권 제3편에서 수행된 바 있다.
(2) 다음으로, 노동이 새로운 가치를 형성하는 동시에 기존 가치를 재생산하지 않고도 새로운 형태의 상품 내에 보전하는 방식을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노동이 인간 노동 일반 (추상적 인간 노동)으로서 가치를 창출하는 동시에, 구체적 유용 노동으로서 생산 수단의 가치를 생산물로 이전시키는 이중적 성격에 기인한다.
(3) 재생산 과정의 유기적 관련성이 개별 자본의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적 총자본의 관점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는 임금과 잉여 가치, 곧 당해 연도에 새로이 부가된 총가치가 체현된 생산물이 어떻게 그 내부에 포함된 불변 자본 부분을 보전하면서도 동시에 개별 수입들의 가치 합계와 등가를 이룰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핵심이다.
더욱이 당해 연도에 투하된 새로운 노동의 총량이 오직 임금과 잉여 가치로만 실현되고 전적으로 이 두 가치의 합계로 표현됨에도, 생산 과정에서 소모된 불변 자본이 어떻게 가치와 소재 양면에서 새로운 불변 자본으로 보충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관건이다.
바로 이 지점, 곧 재생산 과정의 제반 구성 요소들이 지니는 가치적 형태와 소재적 성격 사이의 상호 관계를 규명하는 데 분석의 핵심적인 난제가 존재한다. (제Ⅱ권 제3편 참조).
(4) 한편, 잉여 가치의 여러 구성 부분들이 각기 독립적인 수입 형태로 고착됨에 따라 더욱 심화되는 또 다른 난제가 존재한다.
이는 ‘수입’과 ‘자본’이라는 확정적 규정들이 상호 전도되거나 위치를 변경하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해당 범주들이 개별 자본가의 관점에서나 유효한 상대적인 규정에 불과하며 사회적 총생산 과정의 고찰에서는 소멸해 버린다는 착시를 준다. 곧, 개별적 관점에서의 자본과 수입의 구분이 총체적 재생산 과정 내에서 그 위상이 왜곡되는 현상이 분석의 곤란을 가중시킨다.
예컨대 생산 수단을 생산하는 제1부문 노동자와 자본가의 수입은 소비 수단을 생산하는 제2부문의 불변 자본을 가치와 소재 양면에서 보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처럼 일방의 수입이 타방에게는 자본으로 기능한다는 점을 근거로, 자본과 수입의 범주적 구분이 상품 가치의 실질적 구성과는 무관하다는 사고방식의 논리적 회피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개별적 가치 규정이 유기적 유통 과정에서 상호 전환되는 현상을 본질적인 가치 구성의 부정으로 오독한 결과이다.
나아가 최종적으로 수입 지출의 소재적 대상인 소비 수단을 형성할 상품들은 연간 생산 과정에서 여러 가공 단계 (예: 원사에서 모직물로의 이행)를 거친다. 특정 단계에서 그 상품들은 불변 자본의 구성 요소로 기능하던 상품들이었으나, 다음 단계에서는 개인적 소비의 대상이 되어 전적으로 수입으로 귀속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러한 이행 과정은 애덤 스미스의 견해처럼 불변 자본이 상품 가치의 외관상의 한 요소에 불과하며, 총체적 연관 속에서는 결국 소거된다는 분석적 오류를 낳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또한 가변 자본과 수입 간의 교환 과정이 교차된다. 노동자는 자신의 수입인 임금을 매개로 상품 가치 중 수입을 형성하는 부분을 구매하며, 이 과정에서 자본가에게는 가변 자본의 화폐 형태를 환류시킨다. 곧, 노동자의 수입 지출 행위는 자본가 측면에서 가변 자본의 가치 형태를 복구시키는 화폐적 회수 과정과 맞물려 진행된다.
끝으로 불변 자본을 형성하는 생산물 중 일부는 불변 자본 생산자들 사이에서 현물 형태로 보전되거나 또는 상호 간의 교환을 매개로 보충되며, 이 과정은 최종 소비자와는 무관하게 완결된다. 이러한 기제를 간과할 경우, 소비자의 수입이 총생산물 전체를 보전하며 결과적으로 불변 가치 부분까지 보충한다는 분석적 착시가 초래된다. (제Ⅱ권 제3편 참조).
(5) 가치의 생산 가격으로 전형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난점을 차치하더라도, 잉여 가치가 다른 생산 요소들에 결부된 독립된 형태들, 곧 이윤과 지대로 전환되면서 또 다른 분석적 난점이 야기된다. 이 과정에서 상품 가치가 이러한 가치 분할의 선행적 토대라는 본질적 사실이 간과되는 경향이 있다. 곧, 현상화된 수입의 형태들이 가치 그 자체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결정된 가치가 사후적으로 분할되는 것임을 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상품 가치가 제반 구성 부분으로 분할되고 그 배분액이 수입의 형태로 구체화되는 과정, 그리고 이러한 가치 구성 부분들이 수입의 형태로 전개되는 과정, 곧 서로 다른 생산 요소 소유자들과 결합하여 (그 각각의 가치 구성 부분 사이의 관계로 전환하여) 특정 범주와 자격에 따라 분배되는 일련의 기제는 결코 가치 결정의 원리나 그 내적 법칙을 변동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외관상 전개되는 이러한 분배 관계의 역전된 형태 때문에, 가치가 분배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분배가 가치를 결정한다는 식의 전도된 착시가 지배하게 된다.
또한 토지 소유가 절대 지대로 인한 저해가 부분적으로 발생함에도 수행되는, 이윤율의 균등화에 따른 총 잉여 가치의 자본 간 배분이 개별 상품의 가치로부터 불일치하는 지배적 평균 가격, 곧 생산 가격을 형성한다는 사실 역시 가치 법칙을 조금도 훼손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개별 상품 가격에 배분되는 잉여 가치의 분량에 영향을 미칠 뿐이며, 잉여 가치 그 자체나 가격 구성 요소들의 원천인 상품의 총가치를 부정하거나 폐기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생산 가격의 형성은 가격 법칙의 토대 위에서 전개되는 가치의 전형된 관철 형태에 불과하다.
이러한 논의는 다음 장에서 다룰 전도와 맞닿아 있는데, 이는 가치가 그 자체의 구성 부분들로부터 생성된다는 분석적 착시와 필연적으로 결부되어 있다. 곧, 상품의 각 가치 구성 부분들이 개별 수입으로서 독립된 형태를 취함에 따라, 이를 본래의 원천인 상품 가치와 결부하기보다는 수입의 원천인 개별 소재적 생산 요소와 결부시키게 된다. 결과적으로 가치의 실체인 추상적 노동은 은폐되고, 생산 요소 자체가 가치를 창출한다는 전도된 관념이 형성된다.
상품의 가치 구성 부분들은 물질적으로 소재적 생산 요소들과 결부되어 있으나, 이는 가치 창출의 원천으로서가 아니라 각 생산 당사자 (노동자·자본가·토지 소유자)에게 귀속되는 수입의 원천 (가치 부분)으로서 기능할 뿐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가치 구성 부분들이 이미 결정된 상품 가치의 분해로부터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해당 부분들의 합산과 집계를 결합하여 상품 가치가 형성된다는 전도된 통념이 발생한다. 이는 가치의 본질적 규정과 그것이 외견상으로 배분되는 형태를 착시한 결과이다.
결과적으로 상품의 가치는 임금·이윤·지대라는 수입 가치의 총합으로부터 규정되고, 다시 이들 수입의 가치는 생산 요소인 노동·자본·토지의 가치에 따라 결정된다는 전형적인 순환 논리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곧, 가치의 원천과 가치의 배분 형태를 동일시함에 따라 원인과 결과가 서로를 규정하는 모순적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단순 재생산 과정에서 새로 투입된 노동의 오직 일부분만이 불변 자본의 생산 및 보전에 배분된다. 이는 제1부문의 가변 자본과 잉여 가치의 합 [Ⅰ(v+s)]이 제2부문의 불변 자본 [Ⅱc]과 교환되는 상응 관계를 거쳐 구체화된다. 곧, 새로운 노동은 소비 수단 생산 과정에서 소비된 불변 자본을 소재적으로 보전하는 데 투입되며, 이는 제2부문의 불변 자본 부분은 추가 노동을 조금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상호 상쇄됨에 따라 전체적인 정합을 이룬다.
그러나 총자본의 재생산 관점에서 고찰할 때, 새로운 노동의 직접적 생산물이 아닌 기존 불변 자본은 생산 과정에서 물리적 사고나 소재적 위험에 직면해 있다. 또한 노동 생산성의 변화에 따라 해당 불변 자본의 가치가 하락하는 경제적 위험 역시 상존한다. 이에 따라 새로운 노동이 체현된 잉여 가치 또는 잉여 생산물의 일부는 이러한 예기치 못한 손실에 대비하는 보험 재원의 성격을 띠게 된다. 이 재원이 전문적인 보험 회사를 주체로 하여 운용되는지 여부는 경제적 본질을 조금도 변경시키지 않는다. 이는 수입으로서 개인적으로 소비되지도 않고, 반드시 축적을 위한 자본으로 전환되지도 않는 독자적인 예비분으로서 기능한다.
해당 보험 재원이 실제로 축적 재원으로 기능할지, 아니면 단순히 재생산의 돌발적인 결손을 보전하는 데 그칠지는 구체적인 경제적 정황에 따라 결정된다. 주목할 점은 이 보험 재원이 잉여 가치 및 잉여 생산물의 제 구성 요소 중 (확대 재생산을 위한 적립분을 제외하면),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폐지된 이후의 사회적 생산 체제에서도 반드시 존속해야 할 유일한 범주라는 사실이다. 곧, 이는 체제의 성격과 무관하게 생산 과정의 지속성과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한 필수적 비축분으로서의 위상을 갖는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폐지될 경우, 직접적 생산자의 규칙적인 소비분은 현행 체제의 최저 수준에 제한되지 않고 필연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또한 노령이나 질병 등으로 인해 생산에 참가할 수 없거나 또는 더 이상 생산에 참가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잉여 노동을 제외한다면, 지배 계급을 부양하기 위한 노동은 완전히 소멸하게 된다. 이는 잉여 노동의 성격이 타자를 위한 부역에서 공동체 전체의 후생과 사회적 비축 구축을 위한 의식적 전환임을 의미한다.
사회의 발생적 기원을 고찰하면, 당시에는 가공된 생산 수단이 부재하였으므로, 재생산 과정에서 생산물 가치에 이전되어 현물로 보전되어야 할 불변 자본의 개념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자연이 직접적으로 생활 수단을 제공함에 따라 선행적인 생산 과정의 필요성이 미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욕구의 수준이 낮았던 원시 생산자는 생활 수단 채취 이외의 유휴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 시간을 투입해 자연 생산물을 활, 돌칼, 선박과 같은 생산 수단으로 전환하였다. 이러한 원시적 도구 제작 과정은 소재적 측면에서 볼 때, 발달된 경제의 잉여 노동이 새로운 자본으로 재전환되는 축적의 본질적 원리와 근본적으로 상응한다.
축적 과정에서는 잉여 노동 (초과 노동)의 생산물이 자본으로 전환되는 현상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새로운 자본이 이윤이나 지대 같은 잉여 노동의 파생 형태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은, 자칫 상품의 가치 전체가 수입에서 구성된다는 분석적 오류를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윤의 자본 전환을 정밀하게 분석하면 그 실상은 정반대임을 알 수 있다. 곧, 추가 노동은 (이것은 항상 수입의 형태를 취한다) 기존 자본 가치를 보전하거나 재생산하는 기능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추가 노동이 수입으로서 소비되지 않는 한 새로운 추가 자본을 창출하는 적극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이는 가치가 수입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의 분할 형태인 수입이 다시 자본으로 재전환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분석상의 난점은 새로 투입된 모든 노동이 (그 가치가 임금으로 분해되지 않는 한) 자본가에게 비용 지출 없이 귀속되는 일반적 형태의 잉여 가치로 발현된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이로 인해 해당 가치는 이미 투입된 자본을 보충할 필요가 없는,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부이자 개별 자본가의 순수 수입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렇게 새로 창출된 가치는 개인적 소비뿐만 아니라 생산적 소비로도 전용될 수 있으며, 또는 자본으로도 수입으로도 소비될 수 있다. 이 가치 체현물의 구체적인 현물 형태는 그중 일부가 반드시 생산 수단으로 재투하되어야 함을 이미 규정하고 있다. 이는 가치의 형태적 표현인 수입과 그 실질적 기능인 자본 축적 사이의 필연적 관계를 명시한다.
그러므로 매년 추가되는 노동이 자본과 수입을 동시에 창출한다는 점은 자본 축적 과정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다만 새로운 자본 형성에 투입되는 노동 (노동일 중 원시 생산자가 생존을 위한 식량 채취 대신 도구 제작에 할애하는 시간과 비견되는 부분)은 잉여 노동의 생산물 전체가 선차적으로 ‘이윤’이라는 형태로 포착되기에 그 실체가 은폐된다. 이 ‘이윤’이라는 규정은 잉여 생산물의 물적·소재적 속성과는 본질적 관련이 없으며, 자본가의 잉여 가치 전유라는 특수한 사회적·계급적 관계를 표상할 뿐이다. 이는 잉여 노동의 생산물이 자본으로 재전환되는 축적의 기제가 이윤 분배라는 형태적 표현에 가려져 있음을 시사한다.
실질적으로 노동자가 창출한 잉여 가치는 수입과 자본, 곧 소비 수단과 추가적인 생산 수단으로 분할된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전년도로부터 이월된 기존 불변 자본이 새로운 노동을 매개로 그 가치 측면에서 재생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이는 마멸에 따른 감소분을 보충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며, 통상적인 재생산 과정에서 유지되는 불변 자본에 대해 언급하는 것인데, 불변 자본의 가치 보전은 새로운 가치 창출과 구분되어야 한다. 재생산 과정에서 예외적인 손상이 발생하여 보전이 필요한 경우, 이는 보험 재원의 영역에서 다루어질 사안이다.
나아가 새로 투입된 노동이 가치 측면에서 임금·이윤·지대라는 수입으로 전적으로 분해됨에도, 그 노동의 일부는 항상 소비된 불변 자본의 재생산과 보충에 전용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결정적 지점들이 간과된다.
첫째, 해당 노동 생산물의 가치 구성분 중 일부는 당해 연도의 새로 추가된 노동이 형성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며 생산 과정에서 소비된 불변 자본의 가치가 이전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가치 부분을 체현하는 생산물 부분은 수입으로 전환될 수 없으며, 현물 그대로 교환 과정을 거치더라도 불변 자본의 소재적 형태인 생산 수단을 보충하는 데 귀속된다.
둘째, 새로운 노동의 직접적 결과물인 가치 부분 (제1부문의 가변 자본 v와 잉여 가치 s)은 그 자체로 수입으로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타 부문 (제2부문)의 불변 자본을 보충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해당 가치는 제2부문의 생산물로 전환됨에 따라 비로소 수입으로 소비될 수 있는 현물 형태를 취하게 되는데, 이 최종 생산물 역시 전적으로 당해 연도의 새로운 노동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유념해야 한다.
단순 재생산이 동일한 규모로 지속되는 한, 소비된 불변 자본의 각 요소는 해당 종류의 소재적 형태로 보충되어야 한다. 이때 이 새로운 요소는 수량과 형태가 동등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생산 능력 측면에서 동등성은 확보되어야 한다. 노동 생산성에 변동이 없다면 이러한 현물 보충은 필연적으로 불변 자본이 종전에 보유했던 가치량과 동일한 크기의 가치 보전을 내포하게 된다. 이는 생산 과정의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가치 이전과 보전의 필수적 조건이다.
노동 생산성이 상승하여 동일한 소재적 요소들을 종전보다 더 적은 노동량으로 재생산할 수 있게 된다면, 총생산물 가치 중 보다 작은 비중만으로도 불변 자본의 완전한 현물 보충이 충족된다. 이 경우 보전 후 나머지 부분은 새로운 자본 축적에 투하되거나, 생산물의 더 큰 부분이 소비 수단의 형태를 취할 수 있으며, 또는 사회적 잉여 노동이 감축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노동 생산성이 저하될 경우에는 생산물의 더 큰 부분이 기존 자본의 보충에 할당되어야 하므로, 결과적으로 실질적인 잉여 생산물은 감소하게 된다. 이는 생산성의 변동이 가치의 보전과 잉여분의 배분 구조를 규정하는 핵심 변수임을 입증한다.
이윤 또는 잉여 가치의 특정 형태가 자본으로 재전환되는 과정을 역사적 특수성을 배제한 채 단순히 새로운 생산 수단의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고찰한다면, 이는 노동자가 자신의 직접적인 생활 수단 확보를 상회하여 노동할 뿐 아니라, 생산 수단의 생산을 위한 추가적 노동을 수행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곧, 이윤의 자본 전환은 추가 노동의 일부를 새로운 추가적 생산 수단의 형성에 투입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과정이 ‘이윤의 자본 전환’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잉여 노동에 대한 임의적인 처분권이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에게 귀속되어 있다는 사회적 생산 관계의 실상을 체현할 뿐이다. 이는 잉여 노동의 소재적 실체인 추가적 생산 수단이 자본이라는 화폐적·역사적 의상을 두르고 나타남을 시사한다.
이 잉여 노동이 원시 사회에서 생산 수단 형성에 직접 투입되는 노동으로 나타난다는 것과 달리,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그것이 ‘수입’이라는 매개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사실은 해당 노동의 생산물이 비노동자에게 배타적으로 취득됨을 의미한다. 실질적으로 자본으로 전환되는 대상은 ‘이윤’이라는 명목적 명칭 그 자체가 아니다. 잉여 가치의 자본 전환은 본질적으로 잉여 가치와 그 실체인 잉여 생산물이 자본가의 수입으로서 개인적 소비로 소진되지 않고 생산 과정에 재투하됨을 가리킬 뿐이다. 이는 잉여 노동의 산물이 수입이라는 현상 형태를 거쳐 다시금 자본의 물질적 기초로 고착되는 과정의 사회적 성격을 규정한다.
현실적 전환의 실체는 대상화된 노동인 가치, 또는 그 가치를 직접 체현하고 있는 생산물이며, 또는 해당 가치가 화폐로 실현된 후 그 화폐와 교환을 매개로 하여 확보된 여타의 생산물이다.
이윤이 자본으로 재전환되는 국면에서 잉여 가치의 이윤이라는 특수한 형태가 새로운 자본의 본원적 원천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잉여 가치가 하나의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전환될 따름이다. 그러나 잉여 가치를 자본으로 규정하는 결정적 요인은 이러한 형태적 전환이 아니라, 자본으로서 기능하는 상품이며 그 가치다.
잉여 생산물의 가치가 지불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 가치가 잉여 가치로 정의되는 사회적 전제 조건일 뿐, 노동의 대상화나 가치 자체에 대해서는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따라서 자본 축적의 실체는 형태의 변화가 아닌, 지불되지 않은 노동이 체현된 가치물의 생산적 재투하에 존재한다.
가치 구성과 수입 사이의 관계예 대한 오해는 각종 형태로 나타난다. 먼저 불변 자본을 구성하는 상품들도 역시 그 자체로 임금·이윤·지대라는 수입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거나, 동일한 가치물이 한 사람에게는 수입이나 타인에게는 자본으로 기능한다는 점을 근거로 이를 오로지 주관적 관계의 산물로 치분하는 견해 등이 그러하다.
실제로 방적업자가 생산한 면사에는 자신의 이윤을 표상하는 가치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이때 직물업자가 해당 면사를 구매하는 행위는 방적업자의 관점에서 이윤을 실현해 주는 것이지만, 직물업자 본인의 관점에서는 해당 면사가 단순히 자신의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불변 자본의 일부로 기능할 뿐이다. 이는 가치물이 생산의 순환 과정에서 점유하는 위치에 따라 그 경제적 규정이 객관적으로 결정됨을 보여주는 것이지, 결코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는 상대적 관계가 아님을 시사한다.
수입과 자본의 관계에 대해 이미 말한 것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것을 지적하고 싶다. 가치 측면에서 직물업자의 자본 구성 부분으로 구성되는 것은 면사의 가치다. 면사의 가치가 방적업자의 관점에서 자본과 수입, 또는 지불 노동과 미지불 노동으로 어떻게 분해되는지는 상품인 직물의 가치 결정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단, 평균 이윤에 따른 전형은 논외로 한다.)
이러한 논의의 이면에는 이윤과 잉여 가치 일반은 상품 가치를 상회하는 잉여분이며, 이 잉여분은 가격 인상이나 상호 기만, 또는 양도 이윤을 매개로 하여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도식이 항상 배후에 숨어 있다 그러나 상품이 생산 가격이나 가치대로 매매된다면, 상품 가치 중 판매자에게 수입의 형태로 귀속되는 구성 부분들 또한 정당하게 지불되는 것이다. 이때 독점 가격에서 기인하는 변수는 여기에서 고려하지 않는다.
둘째로, 불변 자본을 구성하는 상품 요소들이 여타의 모든 상품 가치와 마찬가지로 노동자와 생산 수단의 소유자에게 귀속될 임금·이윤·지대라는 분해될 수 있는 가치 구성분으로 귀착될 수 있다는 주장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이는 상품 가치가 해당 상품에 체현된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량의 척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자본주의적 형식으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제Ⅰ권에서 밝힌 바와 같이, 자본의 상품 생산물이 개별 가치 구성 부분들로 분석적으로 분할되어, 일정 부분은 소모된 불변 자본 부분을 대표하며 다른 부분은 가변 자본을, 그리고 나머지는 잉여 가치를 각각 표상한다는 사실은 이러한 가치 해소 논리에도, 결코 부정되지 않는다. 이는 가치의 원천과 그 가치가 재생산 과정에서 수행하는 기능적 역할이 엄연히 구별됨을 시사한다.
슈토르히의 견해는 경제적 규정에 대한 다수의 분석적 오류도 집약하고 있다.
‘국민 소득을 구성하는 매매될 수 있는 생산물은 개인에게는 ‘가치’로, 국가적 관점에서는 ‘재화’로 구분하여 고찰되어야 한다. 이는 국민 소득은 개인의 소득과 달리 가치를 기준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유용성이나 충족시킬 수 있는 욕구의 정도를 척도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고찰』: 19)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에서 비판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첫째로, 생산 양식이 가치 법칙에 근거하고 자본주의적으로 규정되어 있음에도, 한 국가를 국민적 욕구 충족을 위해 기능하는 하나의 유기적 결합체로 상정하는 것은 부당한 추상이다.
둘째로, 설령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철폐된 뒤에도 사회적 생산이 유지되는 한, 가치 결정의 원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곧, 노동 시간의 합리적 규제, 각종 생산 분야로 사회적 노동의 분배,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엄밀한 부기라는 측면에서 가치의 규정은 이전보다 더욱 중요한 비중을 갖게 된다. 이는 사회적 필요와 노동 투입 사이의 객관적 비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필연적 기제로서 기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