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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이자 낳는 자본에서는 자본 관계가 피상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이자 낳는 자본에 이르러 자본 관계는 가장 피상적이고 물신적인 형태에 도달한다. 이 단계에서 자본은 화폐가 직접 화폐를 낳는 M-M´의 형식을 취하며, 가치 증식을 매개하는 생산 과정이나 유통의 흔적은 완전히 소거된다. 상업 자본의 M-C-M´ 운동이 비록 유통 영역에 국한되어 양도 이윤으로 나타날지라도, 자본의 일반적 형태를 유지하며 이윤을 사회적 관계의 산물로 암시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반면 이자 낳는 자본에서는 가치 증식이 화폐라는 사물 자체의 속성인 것처럼 현상된다. 결과적으로 자본이 노동을 착취하여 가치를 창출한다는 사회적 실체는 은폐되고, 화폐가 스스로를 증식시킨다는 극단적인 물신성이 완성된다.

 

상업 자본의 형태는 구매와 판매라는 대립하는 두 국면의 통일이자 운동 과정을 표현하지만, 이자 낳는 자본의 형태인 M-M´에서는 이러한 매개 과정이 소거된다. 예컨대 1,000의 자본이 5%의 이자율로 대부될 경우, 1년 뒤 자본 가치는 원금 C과 이자 Ci의 합인 1,050이 된다. 여기서 자본은 단순한 양적 수치가 아니라 양적 관계로 규정되며, 이는 자기 증식하는 가치로의 자본과 그 원천인 원금 사이의 상관관계를 의미한다. 이처럼 자본이 직접적으로 가치를 증식시킨다는 관념은 자기 자본 또는 차입 자본으로 기능하는 모든 능동적 자본가들에게 공통된 현상으로 나타난다.

 

이자 낳는 자본의 형태인 M-M´은 자본의 일반 공식인 M-C-M´이 양 끝단 M-M´ (M+ΔM)으로 축소된 결과물이며, 이는 화폐가 스스로 더 많은 화폐를 낳는 가치 증식의 과정을 극단적으로 생략하여 보여준다. 본래 완성된 형태의 자본은 생산과 유통 과정의 유기적 총체로부터 일정 기간 잉여 가치를 창출하지만, 이자 낳는 자본에서는 이러한 매개 단계가 완전히 소거된 채 직접적인 증식만이 부각된다. 이로부터 자본은 이자를 스스로 창출하는 자생적 원천으로 규정되며, 가치, 화폐, 상품 같은 단순한 사물 자체가 자본의 속성을 내포한 것처럼 현상하는 물신적 성격이 완성된다.

 

총 재생산 과정의 결과물인 잉여 가치가 사물 자체에 내재하는 속성으로 현상한다. 화폐 소유자가 이를 단순한 유통 수단으로 지출할 것인지, 또는 자본으로 대부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소유자의 주관적 의사에 달려 있다. 이로부터 이자 낳는 자본은 스스로를 증식시키는 가치, 곧 화폐가 화폐를 낳는 자동적 물신의 순수한 형태로 완성되며, 이 과정에서 자본은 자신의 발생 기원을 완전히 은폐한다. 여기서 사회적 관계는 화폐라는 사물 자체의 자기 관계로 고착된다. 결과적으로 자본으로의 현실적 전환 과정은 소거되고, 내용이 결여된 전환의 형식만이 외적으로 나타날 뿐이다.

 

이 단계에서 화폐의 사용 가치는 노동력과 마찬가지로 본래의 가치를 상회하는 더 큰 가치를 창출하는 역능으로 규정된다. 화폐는 그 자체로 이미 잠재적인 자기 증식 가치가 되며, 이러한 속성은 대부라는 고유한 상품 판매 형식에서 발현된다. 이로부터 이자를 낳는 가치 창출의 힘은 배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은 화폐 고유의 자연적 속성으로 고착된다. 화폐 대부자는 자신의 화폐를 이자를 산출하는 사물로 매각하며, 현실의 기능 자본 역시 기능적 수행이 아닌 자본 그 자체, 곧 화폐 자본의 속성으로부터 이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현상한다.

 

여기에서는 자본 관계의 왜곡이 더욱 심화된다. 이자는 본래 기능 자본가가 노동자로부터 착취한 잉여 가치의 일부에 불과함에도, 자본 고유의 본원적인 과실로 현상하며 이윤은 기업가 이득이라는 명목하에 재생산 과정의 부속물로 전락한다. 이로부터 자본의 물신적 형태와 그 관념은 최종적으로 완성된다.

 

M-M´의 형식은 생산 관계를 극단적으로 전도하고 사물화하며, 자본의 재생산 과정에 선행하는 무개념적이고 단순화된 자본의 형태를 드러낸다. 자본 물신화의 정점은 화폐나 상품이 재생산 과정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가치를 증식시키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물신적 주장으로 귀결된다.

 

자본을 가치 창출의 독립적 원천으로 규정하려는 속류 경제학에 있어 M-M´ 형식은 이론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토대가 된다. 이 형식 내에서는 이윤의 근원적 원천이 비가시화되며,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의 결과물이 과정 자체로부터 분리되어 자립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자본은 화폐 자본의 형상을 취하면서 비로소 상품화되며, 이러한 자본의 자기 증식성은 이자율이라는 고유한 가격 형식에서 표출된다.

 

이자 낳는 자본, 특히 그 직접적 형태인 화폐 자본에서 자본은 M-M´이라는 순수한 물신적 주체이자 거래되는 사물로 완성된다.

 

첫째, 자본이 화폐의 형태로 존재하면서 자본의 모든 특수성과 실물적 요소가 소거되기 때문이다. 화폐 형태 내에서는 상품 간의 사용 가치 간 구별은 물론, 생산 조건에 따른 산업 자본 간의 차이마저 무화된다. 재생산 과정에서 화폐가 일시적 통과 국면에 불과한 것과 달리, 화폐 시장에서의 자본은 언제나 자립적인 교환 가치인 화폐 형태로 잔존한다.

 

둘째, 자본이 창출하는 잉여 가치 역시 화폐 형태로 나타나며, 이는 자본 고유의 속성으로 오인된다. 식물의 성장이 나무의 자연적 속성이듯, 화폐를 증식시키는 역능 또한 화폐 자본에 내재한 본질적 속성으로 현상하는 것이다.

 

이자 낳는 자본에서 자본 운동은 극도로 단축되며 모든 매개 과정은 생략된다. 이에 따라 자본 1,000은 그 자체로 존재하다가도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1,100으로 전환되는 사물로 묘사된다. 이는 포도주가 저장고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용 가치를 높이는 과정과 비슷하다. 이 단계에서 자본은 사물 그 자체로 자본의 지위를 획득하며, 화폐는 스스로 증식하려는 역동적 속성을 지닌 존재로 변모한다.

 

화폐가 대부되거나 재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순간, 그것이 물리적으로 어디에 위치하든 또는 시간의 경과와 무관하게 이자는 끊임없이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모든 자본의 가치 표현물인 이자 낳는 화폐 자본은, 부의 화폐적 축적을 갈망하는 화폐 퇴장자의 물신적 소망을 현실화한다.

 

사물로의 화폐 자본이 스스로 이자를 산출한다는 점에 대해 루터는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이는 그가 고리대를 비판한 소박한 근거가 되었다. 루터는 대부자가 대출 상환의 지연으로 채무 이행에 차질을 빚거나 투자 기회를 상실하여 실질적인 손실을 본 경우에만 이자 청구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당시의 고리대 관행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대부자들은 발생하지도 않은 가공적 손해, 곧 지불 불능이나 수익 기회 상실에 따른 보상을 모든 대부에 관습적으로 적용하면서, 화폐 100이 자연적으로 두 배의 이자를 낳는 것처럼 합리화한다. 이는 증명되지 않은 불확실한 우연을 필연적인 것으로 둔갑시켜 타인의 자산을 갈취하는 행위이며, 법률가들이 지적하듯 실재하지 않는 가공의 손해를 근거로 한 명백한 고리대다. 이러한 방식은 결국 세계 질서를 파멸로 몰아넣을 것이다. 실질적인 불행으로 인한 보상은 정당할 수 있으나, 상업적 대부의 실상은 이와 반대로 가난한 이웃을 희생시켜 위험과 노동 없이 부를 축적하려는 탐욕에 불과하다. 화폐를 대부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근심이나 위험 없이 안락한 처소에 앉아 타인의 노동에서 자산을 증식하려는 행태는 정당화될 수 없다.’ (루터, 1540)

 

자본이 재생산 과정에서 스스로를 증식시키며, 고유한 속성인 이른바 스콜라 철학자들이 언급한 ‘숨은 자질’에 따라 존속·팽창한다는 관념은 프라이스의 허황된 구상으로 이어진다. 가히 연금술적 공상을 방불케 하는 이 착상은 윌리엄 피트로부터 국채 상각 기금 법안의 재정적 지주로 채택되기에 이른다.

 

‘복리로 운용되는 화폐의 증식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가속화되며, 예수가 탄생한 해에 5% 복리로 대부된 1페니가 현재에 이르러서는 지구 1억 5,000만 개를 채울 순금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니게 되었을 것이다. 반면, 단리로 운용되었을 경우 그 가치가 7실링 4.5펜스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어, 정부 재정 개선의 해법을 복리 운용에서 찾는다.’

 

나아가 프라이스는 그의 저서『연금 지불에 관한 고찰』 (1772)에서 더욱더 허황된 논리를 전개한다.

 

‘서기 원년 예루살렘 사원에서 6%의 복리로 대부된 1실링은 현재 토성 궤도의 지름과 맞먹는 거대한 구체 형태의 태양계 전체를 순금으로 가득 채운 것보다 더 큰 금액으로 증대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는 결코 재정난에 빠질 수 없다. 국가는 최소의 저축만으로도 국가의 이해관계가 요구하는 짧은 기간 안에 최대의 부채를 상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13,14)

 

그는 저서 『연금 지불에 관한 고찰』 (1772)에서 6% 복리로 대부된 1실링이 태양계 전체를 순금으로 채울 만큼의 거액으로 증대했을 것이라는 더욱 극단적인 주장을 펼친다. 이를 근거로 국가는 최소한의 저축만으로도 단기간에 막대한 부채를 상환할 수 있으므로, 결코 재정 위기에 직면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이는 영국 국채 운용의 허구적 속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론적 실례라 할 수 있다.

 

‘이는 영국 국채에 대한 얼마나 훌륭한 이론적 안내서인가!’

 

프라이스는 기하급수가 산출하는 방대한 수치에 현혹되었을 뿐이다. 그는 자본의 재생산 과정과 노동 조건을 완전히 배제한 채, 자본을 스스로 증식하는 자동 기관이자 단순한 수적 체계로 오인하였다. 이는 맬더스 (1798)가 인구 증가를 기하급수적 원리로만 파악한 것과 일치하며, 결과적으로 프라이스는 s=c(1+i)n이라는 수식에서 자본의 발전 법칙을 도출하였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었다. 여기서 s는 원금과 복리의 합계, c는 투하 자본, i는 이자율, n은 가치 증식의 기간을 의미하며, 이 공식은 자본을 현실적 생산 관계로부터 고립된 추상적 숫자로 치환시킨다.

 

피트는 프라이스의 이론을 국가 재정 정책에 적극적으로 입안하였다. 1786년 영국 하원은 공익 실현을 위해 1,000,000파운의 재원 확보를 결의하였으며, 피트는 확보된 자금을 복리 방식으로 축적하면서 국채를 소멸시키려 하였다. 그는 이를 위해 인민에 대한 과세를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간주하였다. 하원의 결의에 따라 기초된 피트의 법안은 ‘만기 종신 연금을 포함한 기금이 매년 증액되어 4,000,000파운드에 도달할 때까지’ 250,000파운드씩 축적할 것을 명시하였다 (조지 3세 제26년 (1786)의 법률 제31호).

 

피트는 1792년 국채 상각 기금 증액을 제안하는 연설에서 영국의 상업적 패권 요인으로 기계와 신용 등을 언급하며, 그중에서도 ‘축적’을 ‘가장 폭넓고 항구적인 원인’으로 지목하였다. 그는 ‘애덤 스미스로부터 체계화된 이 원리가 연간 이윤의 일부를 저축하여 원금을 증대시키고, 이를 재투자하여 지속적인 이윤을 창출하면서 달성된다.’고 보았다.

 

결국 피트는 프라이스의 이론적 지원하에 애덤 스미스의 축적론을 채무 축적에 기반한 인민적 부의 증대라는 치부론으로 변질시켰으며, 채무 상환을 위해 다시 차입을 반복하는 맹목적인 부채 증식의 굴레에 도달하게 되었다. (CW 33: 223-224)

 

이미 근대 은행업의 선구자인 차일드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100파운드의 자산이 10%의 복리 하에 70년이 경과하면 102,400파운드에 도달한다.’ (1754: 115. 1669년 집필)

 

이는 복리의 가공할 증식력을 강조하였다.

 

프라이스 박사의 이러한 관념이 근대 경제학 전반에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어 있음은 『이코노미스트』 (1851년 7월 19일자) 지의 기술에서도 확인된다.

 

‘저축된 자본은 복리 증식을 매개로 모든 부를 잠식하면서, 세계의 모든 수입원이 이미 자본의 이자로 귀속되었으며 현행 지대 역시 이전 토지에 투하된 자본에 대한 이자 지불에 불과하다.’

 

결국 이자 낳는 자본의 논리 체계 안에서 생산되는 모든 부는 자본의 소유로 간주되며, 자본이 지금까지 수취한 성과는 그 끝없는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선차적 할부금에 지나지 않는다. 인류가 제공하는 모든 잉여 노동이 자본의 내재적 법칙에 따라 자본에 귀속된다는 이러한 발상은, 자본을 인간의 희생을 요구하는 잔혹한 신 ‘몰록’과 같은 존재로 형상화한다.

 

끝으로, ‘낭만주의적’ 뮐러 (1809: 147-149)의 횡성수설을 살펴본다.

 

‘프라이스 박사가 주장하는 복리의 거대한 증식이나 인간의 자기 가속적 힘은 수 세기에 걸친 분열 없고 중단 없는 질서를 전제한다. 그러나 자본이 독립적인 분야들로 분할될 때마다 힘의 축적은 원점에서 재시작된다. 자연은 힘의 누진적 성장을 개별 노동자 (!)의 평균 노동 기간인 20-25년 단위로 제한하였다. 이 기간이 지나면 노동자는 자본을 새로운 노동자나 자손에게 이전해야 하며, 수혜자들은 자본을 운용하는 법을 새로이 습득해야만 이자를 창출할 수 있다. 더욱이 축적된 거액의 자본은 즉각적으로 노동 확대에 투입되지 않고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축적되다가, 대부의 형태로 다른 개인·노동자·은행 또는 국가에 이전된다. 차입자는 해당 자본을 실제로 운용하여 복리를 창출하면서 대부자에게 단리를 지불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생산과 절약의 법칙이 인간의 힘을 증대시키더라도, 소비와 낭비의 법칙이 이에 반작용하는 것이다.’

 

이 기술에는 가장 어리석은 망상이 집약되어 있다. 노동자와 자본가, 노동력의 가치와 자본의 이자 사이의 조잡한 몰이해는 차지하더라도, 복리의 취득 원리를 단지 자본이 대부되어 복리를 가져온다는 순환 논리로 설명할 뿐이다. 이러한 방식은 낭만파 특유의 전형성을 보여준다. 사물의 피상적 외관에서 도출한 속류적 편견들을 현학적 표현으로 포장하여 숭고한 진리인 양 격상시키는 것이 그 본질이다.

 

자본의 축적 과정은 자본으로 재전환되어 새로운 잉여 노동을 흡수하는 데 기여하는 이윤 (잉여 가치)의 일부를 ‘이자’로 규정할 때만 비로소 복리의 축적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의 축적 원리는 다음의 두 가지 요인으로 인해 제약된다.

 

첫째, 모든 우연적 변수를 배제하더라도 기존 자본의 상당 부분은 재생산 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지속적으로 가치가 하락한다. 상품 가치를 결정하는 척도는 최초 생산에 투입된 노동 시간이 아니라 재생산에 소요되는 노동 시간이며, 이는 사회적 노동 생산성이 발달함에 따라 끊임없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적 생산력이 고도화된 단계에서 모든 자본은 장기적인 축적 과정의 산물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단기적인 재생산 주기의 결과물로 나타난다.

 

둘째, 제Ⅲ권 제3편에서 논증한 바와 같이, 자본 축적의 확대와 사회적 노동 생산성의 증대는 가변 자본에 대비한 불변 자본의 상대적 비중을 높이며, 이는 결국 이윤율의 저하를 초래한다. 1명의 노동자가 처리하는 불변 자본의 양이 10배로 증가했을 때 종전과 동일한 이윤율을 유지하려면 잉여 노동 시간 또한 10배로 늘어나야 한다. 그러나 노동 시간 전체, 심지어 하루 24시간을 모두 자본이 점유하더라도 이윤율의 하락을 저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윤율이 불변할 것이라는 전제는 프라이스의 기하급수적 성장론 및 ‘복리로부터 모든 부를 잠식한다는 자본’에 대한 일반적 오인의 근거가 된다.

 

잉여 가치와 잉여 노동의 등가성은 자본 축적에 질적 한계를 설정한다. 그 한계는 총 노동일의 범위, 그리고 노동력을 동시에 착취할 수 있는 규모를 규정하는 생산력과 인구의 가용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잉여 가치가 이자라는 무개념적 형태로 파악될 경우, 그 한계는 오직 양적인 수치로 매몰되며 온갖 물신적 망상이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

 

그런데 이자 낳는 자본에 이르러 자본 물신의 관념은 최종적으로 완성된다. 이 관념 하에서 화폐 형태로 고정된 축적 노동의 생산물은, 내재된 물신적 속성에 기대어 기하급수적으로 잉여 가치를 창출하는 독자적 자동 기관으로 격상된다. 그 결과 자본은 『이코노미스트』의 기술처럼 세계의 모든 부를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정당한 이자로 간주해 온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이전 노동의 생산물이 그 자체로 잠재적인 살아있는 잉여 노동을 이미 내포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전 노동 생산물의 가치가 유지되고 재생산되는 실체적 근거는 그것이 살아있는 노동과 결합하는 데 있으며, 이전 노동이 살아있는 잉여 노동에 대해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 또한 이전 노동이 살아있는 노동과 대립하며 독립적 우위를 점하는 특수한 사회적 관계, 곧 자본 관계가 지속될 때만 성립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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