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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앙공산당


'가난한 인민일수록 자신의 생활 전반에서 더 누릴 수 있어야 하지만, 지도부의 일원일수록 그래서는 안 된다.' 


요즘 지도부 일원의 전반을 보면 이를 반대로 행하고 있다. 정치적 주체도 아닌 낭비적 주체 같다. 인민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있음에도, 지도부는 자국의 멸망을 독촉하거나 인민의 의지를 저버리고 만다. 지도부가 투명해야 할 때, 저 아메리카의 공교육마저 무너진 시점에서, 정치인들은 과연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들의 자녀까지 보호하고자 서로를 죽이도록 만들고 있다. 


사실 진정한 금욕의 의미는 높은 자리의 정치인들에게 강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인민들에게 재분배되어야 한다. 이것은 사회주의의 본래 기초였다. 그러나 모든 체제는 소수의 사람들로 인해 변질되기 마련이다. 단순히 그들은 소수자임에도 자본가들과 더불어 지분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말이다.  


거론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비록 출마 선언을 한 미국의 뉴욕 시장인 맘다니 역시 기대와는 달리 새로운 대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국내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한다. 


그저 읽고 넘어가시길. 


지금은 프롤레타리아트에 소속된 도시민의 일원이지만, 가끔 나 역시 이르고 정당하게 선출된 지도부의 일원이 되고 싶을 때가 있다. 잠시 눈을 감고 들으면 그 목소리는 꼭 지나간 인민들의 부름 같다. 그런 점에서 모든 정책은 단순히 실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인민의 삶이요, 곧 실천해야 할 제도인 것이다. 


쉬운 예를 들자면, 어떤 도로에 눈이 쌓여 길이 막혀 다같이 치우기로 약속했다면, 각자가 전담하여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눈을 치워야 한다. 그러나 그것조차 하지 않고, 눈길을 내버려두고 단순히 재산이 많다거나 지위가 높다는 이유로 꾀를 부릴 수 있다면 그 역시 남은 사람들이 눈길을 치울 수밖에 없다. 새치기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행위들이 모인다면 눈길은 방치되고 결국 도로는 정체된다. 


지금의 사회 모습도 이와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오직 개인만이 남으면 그렇게 된다. 몸이 불편하거나 힘이 든다면 쉬고 나중에 다시 일하면 된다. 하지만 꾀를 부리는 사람들로 인해 열심히 일한 사람들은 정작 쉬지도 못하고 남은 일을 마저 한다. 이것이 곧 사회의 모순이라 부를 수 있다면, 사회적 실험을 하지 않더라도, 어느 집단이든 이러한 사례는 많다. 다만 눈치채고 있지 못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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