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때 나는 고대사 전공자가 되지 않을 거고, 과제를 준비할 때 한국사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일부 기사를 찾아서 원문과 비교하며 읽어도 다 읽을 수준은 아니라서 여태 피해왔다. 이 책을 21살 때 도서관에서 처음 봤는데... 얕은 지식으로는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교사지망생이 된 후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원사료를 직접 보지 않고 연구서나, 요약본에만 의존하여 가르치는 건 너무 비양심적 하수라고 판단하여 작년부터 김부식 외, 이병도 역주, 『삼국사기 (상)·(하)』, 을유문화사, 1983을 읽어서 오늘 끝을 냈다.
주지하듯이 『삼국사기』는 1145년 고려 시기 때 인종의 명으로 묘청의 난을 진압한 김부식의 주도 하에 10여명의 편수관들이 편찬한 역사서이다(=관찬사서=김부식의 독자적 저술이 아님). 기전체 사서로서 본기 28권, 연표 3권, 잡지 9권, 열전 10권으로 구성되었다. 내용은 신라, 고구려, 백제, 궁예와 견훤 등 이른바 후삼국의 역사가 주류이나 가야나 발해는 극히 일부 기사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삼국사기』는 한국에 있어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이고, 서울대 권장도서 100선에 포함된 도서이기도 하다.
한편 이 책의 역주를 담당한 이병도(李丙燾, 한국생, 1896~1989)는 와세다대(早稻田大)에서 쓰다 쏘우키치(津田左右吉, 일본생, 1873~1961)에게 지도 받고 졸업하였다. 귀국 후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 일본생, 1878~1952)의 추천으로 조선사편수회에 촉탁되고, 진단학회에서 활동하면서 식민사관을 생산하는데 일조하기도 하였다(역주를 보면 익숙한 일제사학자들의 이름들이 많다). 1945년 이후 반민족행위자로 찍혔지만 정부의 반공 정책으로 사그라지면서 경성대(현재 서울대)에서 교수로서 제자들을 양성하고, 허정 과도 정부 때 문교부 장관, 학술원 원장, 박정희 정부 때 국토통일원 고문, 전두환 정부 때 국정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역자는 『삼국사기』의 역주 작업을 1941년부터 시작하여 1983년에 마친 듯하다.
(느낀 게 너무 많아서 할 말이 넘치지만) 직접 읽어본 실효는 6가지이다.
1. 한문 공부는 물론 원문과 번역문의 비교가 용이하다.
2. 신라, 고구려, 백제의 역사 흐름을 왕조의 가계 등 사소한 것까지 제대로 파악하여 수업 때 더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겠다.
3. 일식, 지진, 가뭄, 역병 등의 기사도 볼 수 있다.
4. 지리적 지식이 풍부해진다.
5. 역주를 통해 당시 식민사학자들의 학술적 논의나, 한가위, 반어피 등 생활사를 자세히 알 수 있다.
6. 연구서나 요약본에서의 『삼국사기』에 대한 설명을 이해할 수 있다(동시에 비판도 가능하다).
인물들의 가계와 언동, 지리적 개념과 그 연원, 교과서의 분절적 설명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역사 흐름 등을 이해할 수 있기에 읽을 가치는 충분히 있다. 시간의 여건이 있다면 다른 번역본도 찾아 읽어 보고, 더 있으면 원문을 판본마다 비교하면서 지식을 축적하고 싶은데.. 이는 다음의 과제로 남기고자 한다.
내가 여태 초·중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다니면서 자료는 물론 사료도 제대로 읽지 않고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그렇게 얕게 공부한 사람들이 나중에 교사나 공무원이 된다면 분명 반드시 그들은 망국(亡國)의 책임을 면할 수 없으리라..
* 솔직히 『삼국사기』를 읽으면서 재미가 있기도 없기도 함을 느꼈다. 특히 재미가 없을 무렵에 매일 반갑게 인사해주고, 수업도 적극적으로 임하며, 학교 도서실에서 가 재밌다고 하던 모범생 덕분에 힘내서 읽기도 하였다. 이에 그 모범생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 이 자리를 빌려 나에게 『삼국사기』를 읽게끔 책임감을 준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착한 일을 하지 아니하면 길(吉)이 흉(凶)으로 변하고 착한 일을 하면 재앙이 도리어 복(福)으로 화(化)하는 것입니다(상, 367쪽)."
"이사(李斯)는 충성을 다하다가 진(秦)의 극형(極刑)을 받았다.(하, 465쪽)"
"궁예(弓裔)·견훤(甄萱)의 흉악(凶惡)한 인간(人間)이 어찌 아태조(我太祖)에게 서로 항거(抗拒) 할 수 있으랴? 다만 태조(太祖)를 위하여 백성을 몰아다 준 자(歐民者)였다(하, 5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