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개인의 서재
  • 분노 1
  • 요시다 슈이치
  • 11,700원 (10%650)
  • 2015-07-15
  • : 1,453





 요시다 슈이치는 자신의 작품에서 소설적 장치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소설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청춘 소설을 쓸 때도, 분노와 같이 사회적인 메시지를 들어내고자 할 때도 소설의 구조에 자신의 메시지를 표현하기 위한 장치를 만들어 독자에게 설명하는 똑똑한 소설가다. 도쿄 외곽에서 끔찍하고 엽기적인 부부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복도에 피해자의 피로 쓴 '분노'라는 글씨로 일본 전역에 이목을 끊다. 성형수술로 외모를 바꾸고 도피 중인 범인은 1년째 잡히지 않고 있는 중 지바 어촌에서 일하는 마키 요헤이와 그의 딸 아이코 부녀. 동성애자 후지타 유마. 오키나와의 작은 섬으로 급히 이사 한 고미야마 이즈미. 그들은 도주 중인 범인 야마가미 가즈야의 몽타주와 생김새의 특징을 통해 점점 주변인을 의심하게 된다.


 서평 첫머리부터 소설적 장치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소설가라 칭찬을 했는데 내가 주장하고 싶은 소설 '분노' 속 사용된 장치는 무엇일까? 분노의 첫 장은 6p의 짧은 분량 안에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범인 야마가미 가즈야의 범행 행적을 소개하는 데 할애된다. 40도 가까이 치솟은 범행 현장에서 대부분을 알몸으로 보내고 에어컨 스위치를 찾으려 모든 스위치에 그의 지문이 찍혀 있다. 아내 리카코를 먼저 살해하고 리카코보다 한 시간쯤 후에 귀가한 남편 유키노리의 등을 칼로 찔러 살해한 뒤 욕실에서 유키노리의 몸을 다리 사이에 끼고 샤워를 하며 피를 씻어낸다. 범행 후 6시간이나 넘게 유키노리, 리카코 부부의 저택에 머물며 1, 2층을 유유히 걸어 다니고 리카코가 슈퍼마켓에서 그 날 사온 호밀 식빵과 냉장고에 들어있던 먹거리를 집어 먹고 옆집 자전거를 타고 하치오지 역으로 향하다 검문 중인 경찰관에게서 쏜살같이 도망친다.


 그 뒤 1년이 되도록 검거하지 못한 배경에서 본격적인 내용이 시작되지만, 긴장과 의심보다는 일상적이고 훈훈한 전개와 묘사가 계속된다. 물론 게이, 딸을 성매매업소에서 구출해 온 아버지, 불륜추문으로 야반도주한 모녀 등 그들이 사회적 소수자, 약자라는 자리에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일상을 조명하는 방식은 분명 따듯함과 사랑을 보여주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작중 살인자 야마가미 가즈야에 대한 기술과 이들 셋을 중심으로 하는 소설 전개의 온도 차는 심하게 나는데 나는 이것이 요시다 슈이치가 노린 장치라고 생각한다.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 같은 온도에서(구체적으로 야마가미 가즈야로 의심하는 인물에 대한 아이코, 유마, 이즈미의 감정) 가까운 누군가를 살인범으로 의심하는 건 두렵고 떨리는 공포였을 것이다.


 만약 요시다 슈이치가 이 온도 차를 설정하지 않았다면 등장인물들의 두려움은 스릴러, 추리라는 흥미 요소에 감춰져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대표작 '악인'과 함께 '분노' 역시 추리소설이라는 탈을 썼지만, 추리소설이라는 장치를 통해 인간적 감성을 들춘다. 악인은 인간이 보기 싫어하는 인간의 악성, 죄성에 대해. 분노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믿음이 흔들리는 비극과 믿고 싶은 사람들을 보여준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요시다 슈이치가 소설을 쓸 때 가장 집중하는 곳은 사람이다. 보기 좋은 면, 보기 싫은 면 모두를 아우른다.


 아쉬운 점도 있다. 위에서 말한 장치가 제대로 융합하지 못해 소설 속에서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전체적인 완성도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 결국 장편 소설은 구성을 통해 이야기를 채워 나가는데 군데군데 채우지 못한 빈 공간이 보인다.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작품을 발표했다면 어땠을까. 요시다 슈이치는 꽤 다작을 하는 편이다. 좋은 메시지가 담겼지만 아쉽게도 붕 떠버린 본 작품과 다작의 연관성을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본인의 대표작이자 뛰어넘어야 하는 숙적 '악인'과의 대결을 위해서도 긴 집필 기간을 가진 다음 소설을 기대해 본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