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나는 무기력과 우울의 극단를 달렸다. 학교 가기 싫어함은 물론 학교에서도 책상에 엎어져 잠만 잤다. 집에 돌아와서도 잠만 자고 나를 위한 어떠한 투자도, 노력도 기대하지도 원하지도 않았다. 나에겐 그야말로 희망이 없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그 시절의 나를 설명해줄 수 있는 책을 만났다. 실제로 10여 년 간 무기력증을 경험했던 인지과학자 박경숙씨가 쓴 책 문제는 무기력이다는 ‘학습된 무기력’에 대한 소개와 위험성. 원인,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한 책이다.
이 책의 핵심 주제인 학습된 무기력이란, 피하거나 극복할 수 없는 환경을 반복적으로 경험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다른 상황에서 자신이 실제로 극복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려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학습된 무기력에 대한 설명과 예시들을 읽다보니 나 또한 학습된 무기력에 깊이 빠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보다 이전의 나는 고등학교 시절처럼 어떠한 도전도 시도조차 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성을 띄고 열심히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실패가 반복되고 내가 노력한다고 나아지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내가 무얼 해도 제자리라는 마음에 정신적으로 탈진해 버렸던 것 같다. 더 이상 에너지를 뿜을 수 없는 탈진한 내 몸은 오늘도 잠 내일도 잠이라는 불행한 생활을 택하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무기력하다고 느끼는가? 그렇다면 우선 이 두 가지를 받아들이길 바란다. 하나는 자신이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는 포로 신세’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막 여행과 같이 지루한 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막과 수용소는 뜨겁고도 차가운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무기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사막의 열기보다 더 뜨거운 ‘삶의 의미’를 찾아내야 하고, 수용소의 교활한 간수를 넘어설 수 있는 ‘자기 극복’을 이루어 내야 한다.(135p)
미로는 길을 잃게 하려는 의도로 만든 것이므로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어렵지만 미궁은 목표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갈림길 없이 하나로 연결되어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걷기만 한다면 반드시 길을 찾아 나올 수 있는 게 미궁이다. 무기력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이런 미궁과 유사하다. 걷기만 한다면 미궁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우리의 본성을 회복하기만 하면 되므로 애써 없는 것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156p~157p)
무기력과 싸우는 것을 사막 여행과 미궁 탐험에 비유한 저자는 우리가 원래 갖고 있던 본성은 무기력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어린이들은 무기력하지 않고 항상 도전하는 것을 잘한다. 나도 어릴 때는 그랬었다. 멀지만 포기하지 않고 걷는다면,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이 무기력이라는 사실을 알면 내가 수용소에 갇힌 신세라는 것은, 지루한 사막 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은 그다지 절망적인 상황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빠져나올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방점을 이곳에 찍었다면 말이다.
독서 고수들은 자기 계발서를 되도록 멀리 하라 말하고 심지어 혐오하기까지 한다. 나도 독서인들이 말하는 자기 계발서를 읽지 않기를 권하는 이유를 충분히 알고 공감한다. 하지만 가끔 내가 얼마나 나태하고 나약한 인간인지 느끼면서 전환점을 찾고 싶을 때. 내게 적합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적절한 자기 계발서 한 권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내 뇌는 생각보다 단순해서 그들의 위로와 권고를 몇 시간 후면 사라질 휘발성 텍스트라 하더라도 일단은 저장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170p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이렇듯 진정으로 전환하기를 원한다면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한 번에 발휘해 그곳에서 빠져나와야만 한다.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한 번에 발휘하는 것은 분명 많은 에너지와 노력.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무기력에서 빠져나온 ‘활력’ 안에 공기는 분명 말도 못하게 맑고 시원할 것이다. 노력하고 앞으로 꿋꿋이 나아가는 것. 어렵다. 하지만 무기력의 더러운 공기보다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한 번에 발휘해 그 곳을 빠져나와 활력의 시원한 공기를 킁킁 맡은 나는. 최선의 노력을 해 이 자리에 있기 한 방금 전의 나에게 고마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