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이런 남자가 존재한다. 태어날 때부터 비실비실하게 태어난 남자. 어릴 때부터 남다르게 똑똑했던 장남 형과는 달리 기대할 것도 없고 남동생에게 형이라는 변변한 호칭 한 번 제대로 못 들은 채 무시당하며 산 남자. 그러나 자신의 몫은 꼭 성에 차지 않게 하더라도 꼭 자신이 해내는 남자. 그런데도 늘 무시당하는 시선이 일상이었던 남자. 장남이 고엽제로 인해 베트남에서 죽은 후에는 장남의 무거운 직분도 어깨에 매달고 어렵지만 뿌리치지 않고 힘들다는 말 하나 없이 해냈던 남자. 두 동생들 대학 학비 때문에 직장이 끝난 후 아르바이트를 몇 개나 하는 짠돌이의 생활을 해야 했던 남자. 회사 경영자들이 도망가 버린 회사를 바보 같이 끝까지 지켰던 남자. 동생의 아들도 결국 자신의 아들로 여기고 책임진 남자. 나를 위해보다는 가족을 위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렸던 남자. 성석제의 소설 투명인간의 주인공 만수가 바로 이런 남자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이 모든 사건들은 1인칭 혹은 3인칭으로 독자에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만수의 가족, 친구, 혹은 직장 동료 등의 생각과 입으로 독자에게 전해진다.
그리고 만수는 위에 적은 사건 외에도 비극적인 사건들을 더 겪은 후에 투명인간이 된다. 만수 말고도 아내와 연탄가스 중독 때문에 바보가 된 작은 누나, 남동생 석수의 아들이지만 자신의 아들로 키웠던 아들도 투명인간이라고 한다. 책을 완독하고 나 뿐만 아니라 모든 독자들은 성석제 작가가 왜 만수를 투명인간이 되게 했는지 그 뜻과 속셈을 궁금해 했을 것이다. 나 또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리고 네이버 국어사전에 투명의 뜻을 찾아봤다.
투명 : 물 따위가 속까지 환히 비치도록 맑음.
투명인간이라 함은 보이지 않는 인간. 그래서 무엇을 해도 되는 보통 사람들이 한 번쯤은 얻고 싶어 하는 초능력 중 하나다. 하지만 초능력으로, 신비한 능력으로의 관심을 두지 않고 단어 그대로 ‘투명’한 인간이라는 뜻이면 어떨까. 국어사전에 투명이라는 단어를 검색하고 결과가 나온 후 나는 조금 놀랐다. 만수의 삶은 투명이라는 단어에 딱 떨어지게 속까지 환히 비치도록 맑은 생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투명인간 서평에서 ‘우리 모두는 투명인간이다’라는 논지를 펼친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나는 전혀 다르게 생각한다. 만수는 초능력의 일종인 투명인간 능력을 가진 것뿐만 아니라 이미 투명인간이 되기 전부터 투명의 단어 뜻과 꼭 맞는 속까지 환히 비치도록 맑은 삶을 살았다. 만수와 같은 남을 위해,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족을 위해 나를 버리고 희생하는 삶이 어렵다는 것은 만수와 같은 핏줄임에도 불구하고 만수를 형으로 여기지 않다가 끝내 자신의 삶에서 도망쳐 버린 석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만수의 삶은 ‘책임감’이라는 단어 하나 만으로 옭아 버리기에는 너무 어려운, 제 어깨에 짊어 져야 하는 부담과 수고를 기꺼이 얹어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놀라운 삶이었던 것이다. 그런 삶이 평범하다고? 우리는 만수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이라고? 납득하지도, 동의하지도 않는다.
천지지간 만물지종 인간이 가장 귀한 이유가 뭔지 아느냐? 염치를 알기 때문이다. 염치는 제 것과 남의 것을 분별하는 데서 생긴다. 염치, 이 두 글자를 평생의 문자로 숭상하여라. 그러면 너는 어디를 가든 사람답게 살 수 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 받으리라. (28p)
위 말은 만수의 할아버지가 한 말이다. 만수는 평생 할아버지가 해주신 말에서 벗어나 살지 않았다. 신념이나 목표를 꺾고 세상에 지는 것이 얼마나 쉬운 것인지 잘 알기에 만수가 ‘염치를 아는 삶‘을 몸소 실천한 게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다.
염치 모르는 사람에게 잠식 당한 이 세상이 여러 타인들의 눈으로 본 만수의 염치 있는 삶 앞에서 죽은 듯 엎드려 있다. 소설에서는 만수의 주변인물들이 본 시선으로만 만수가 그려져 있다. 주변인물들이 보지 않은 곳에서, 만수가 얼마나 버둥거리며 열심히 살았으니 생각하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