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작가가 아닌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아이디어가 하나 떠오르면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세계를 확장시킬 수 있는 능력의 차이가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스웨덴의 미스터리 소설 《킬러딜》을 읽고 나서 그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킬러딜》은 총 105개라는 엄청난 숫자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한 장당 길어야 두세 페이지밖에 안 되며, 장마다 등장하는 인물이나 배경 등이 확확 바뀌기 때문에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다. 전체적으로 3인칭 서술이지만, 중간 중간 등장하는 1인칭 서술이 작품의 긴장감을 높이기도 한다. 또한, 단순히 범죄 이야기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서 겪는 남녀 차별 문제, 일과 가정사 사이의 불균형에서 오는 스트레스, 우둔한 경찰 체제, 가정 폭력 등을 절묘하게 풍자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그것이 아니었다. 물론 띠지에 적힌 대로 마지막에 가서야 밝혀지는 이중 반전 역시 충격적이었지만, 내게는 그 뒤에 등장하는 감사의 글의 이 구절이 더욱 놀라웠다.
이 모든 이야기는 우리가 집을 구매하려고 브롬마에 있는 오픈하우스에 갔을 때 시작됐습니다. 인기 있는 동네인데도 그날 오픈하우스에는 평소보다 사람들도 많이 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 집에서 나올 때 부동산 중개인이 주위에 없어서 인사도 못 하고 나왔습니다. 순간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지요. 부동산 중개인은 사람들이 다 나갔는지 무슨 수로 알 수 있을까? 아무나 지하실 문으로 슬며시 들어와 오픈하우스가 끝나고 집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지 않을까? 그 후로 이 소재가 흥미진진한 미스터리 소설의 줄거리가 될지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감사의 글
나 역시 얼마 전에 추리소설로 써봄직한 아이디어가 문득 떠오른 적이 있는데, 다음에 바로 든 생각은 ‘에이, 이런 걸 경찰이 모르겠어?’였다. 아마도 이런 점이 작가와 작가가 아닌 사람을 가르는 차이가 아닌가 싶다. 이렇게 사소한 생각에서 이런 멋진 작품을 쓴 작가에게 찬사를 보내며, 엠마 스콜드 시리즈의 나머지 작품들도 하루 빨리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p.s. 좋았던 내용에 비해 번역과 편집은 좀 실망스러웠다. 대표적으로 ‘살인 무기’란 단어가 두어 번 나오는데, 처음에는 뭔가 했는데 흉기를 이렇게 번역한 것 같다. 영어에서는 이렇게 쓰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쓰지 않은 말이어서 많이 어색했다. 특히 경찰의 입에서 나온 단어였기에 더욱 그랬다.
또한, 보조용언을 어떤 때는 띄었고 어떤 때는 붙였는데, 정도가 너무 심해서 읽는 내내 너무 눈에 거슬렸다. 국어에는 원래 없는 과거완료 형태가 지나치게 나온 점 역시 그랬다. 이런 점들에 좀 더 신경을 써줬으면 어땠을까 하고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